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에 총 125조원가량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황 침체기에도 투자 속도를 늦추지 않은 두 기업의 공격적인 행보가 최근 AI 메모리 시장 성장과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글로벌 반도체 매출 상위 10개 기업의 투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R&D 37조7404억원, 설비투자 52조1531억원 등 총 89조8935억원을 집행하며 투자 규모 1위에 올랐다.
이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의 투자액(69조4109억원)보다 20조원 이상 많은 규모다. 사실상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나선 셈이다.
삼성전자에 이어 TSMC가 2위를 기록했고 인텔(40조4499억원), SK하이닉스(35조450억원), 엔비디아(34조9369억원)가 뒤를 이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열풍의 중심에 선 엔비디아보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며 생산능력 확대와 기술 경쟁력 강화에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투자 행보는 업황과 무관하게 이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던 2023년에도 투자 규모는 오히려 증가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연간 영업이익을 크게 웃도는 88조원 이상의 자금을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확충에 투입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연간 투자액은 최근 5년간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21년 72조원 수준이던 투자 규모는 2023년 88조원대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90조원에 육박했다. 경기 변동에 따라 투자를 줄이는 일반 제조업과 달리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선제 투자 전략을 유지한 것이다.
SK하이닉스 역시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지난해 연구개발에 6조원 이상, 설비투자에 28조원 이상을 집행하며 AI 서버용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했다.
연구개발 투자만 따로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37조740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엔비디아(26조3347억원), 인텔(19조6044억원), 브로드컴(15조5350억원), 퀄컴(12조7497억원) 순이었다. SK하이닉스는 6조4656억원으로 8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매출 대비 연구개발 비중에서는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인텔이 26.1%로 가장 높았으며 AMD 23.4%, 퀄컴 20.4%, 브로드컴 17.2% 등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11.3%, SK하이닉스는 6.7% 수준이었다.
업계에서는 최근 AI 반도체 시장 호황의 배경으로 한국 기업들의 장기 투자 전략을 꼽고 있다. HBM과 차세대 메모리, 첨단 공정 분야에서 막대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입한 결과가 현재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 반도체 주도권은 기술력뿐 아니라 투자 여력이 결정하는 산업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년간 이어온 대규모 투자가 최근 시장 우위를 가능하게 한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