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회문제 해결을 경제적 보상과 연결하는 자본주의 모델의 확산에 나섰다. 사회적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하는 실험을 토대로, 사회적 가치가 실제 투자와 자금 배분에 반영되는 시장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은 12일 서울에서 열린 사회적기업월드포럼(SEWF)의 ‘생태계 리더십 교류(ELE)’ 첫 세션에 참석해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유도하는 성과 기반 보상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문제 해결을 개인과 기업의 선의에만 맡기는 방식으로는 갈수록 커지는 문제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사회적 성과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제공해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사회문제 해결을 비용이나 자선활동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경제적 가치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성과를 만들어 낸 주체가 정당한 보상을 받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자본과 인력이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 회장이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다.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한 뒤, 성과 수준에 따라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는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서 관련 개념을 제안했으며, SK는 2015년부터 국내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이러한 시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평가하는 기준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예산을 얼마나 투입했는지, 어떤 활동을 진행했는지를 중심으로 성과를 판단하는 데서 벗어나 실제로 사회문제를 얼마나 개선했는지를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성과를 보다 정교하게 분석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최근에는 사회적 가치를 경제 시스템 전반에 반영하기 위한 논의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사회성과를 측정해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기업의 투자 확대나 자금 유입을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과가 기업의 투자 판단과 공공·민간 조달, 금융 거래 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시장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SK 사회적가치연구원과 WEF 슈왑재단은 지난 8일 ‘임팩트 경제: 공시에서 수요로’라는 공동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에도 실제 투자와 자본 배분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적 성과로 발생하는 편익은 사회 구성원 전반에 돌아가는 반면, 이를 창출하기 위한 비용은 특정 기업이나 기관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사회적 효과가 기업의 단기 재무성과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문제도 지적됐다.
보고서는 이러한 간극을 좁히기 위한 방안으로 관련 규제와 금융제도의 연계, 투자 유인 마련, 정부와 기업 등 다양한 주체 간 협력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수요와 보상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SK의 사회성과인센티브도 사회적 성과에 경제적 보상을 연계한 사례로 다뤄졌다.
해당 의제는 국제적인 정책 논의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관련 보고서의 내용은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도 논의될 예정이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경험을 해외와 공유하기 위한 움직임도 진행된다. SEWF와 사회적가치연구원은 12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ELE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스코틀랜드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15개국 19개 기관이 참여해 국내 사회적 기업 지원 정책과 투자·금융 체계를 살펴볼 계획이다.
참가자들은 국회와 공공기관, 기업 등을 방문해 사회적 가치 보상제도와 민간 투자 활성화 방안을 논의한다. 한국의 제도와 사업 모델을 각국의 경제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한다. 양 기관은 한국 사회적 경제의 발전 과정을 담은 공동보고서도 내놓으며, 한국을 완성된 성공 모델이라기보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새로운 정책과 시장 구조를 시험해 온 사례로 조명했다.
이번 논의의 관건은 사회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를 실제 경제적 보상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다. 사회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기업과 투자자가 이를 의사결정에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구상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을 넘어 시장의 자원 배분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사회문제 해결을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만들고 민간 자본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면, 공공 재정이나 자발적 기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 역시 선의에만 기대 경제적 자원을 사회문제 해결로 유도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며, 사회성과와 경제적 성과를 연결하는 새로운 해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회장이 추진해 온 사회적 가치 실험은 개별 기업의 성과 보상 모델에서 출발해 투자와 금융, 정책을 아우르는 경제 시스템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사회적 성과가 시장에서 실질적인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가 향후 확산 여부를 가를 핵심 과제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