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권 변호사가 개혁에 둘러싼 법적 논쟁을 살펴본다.
글의 순서
Part 1 | 홍승권 변호사의 "AI가 들어온 법조 현장"
Part 2 | 변호사는 AI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Part 4ㅣAI 법률상담 시대, 변호사와 AI 협업이 필요한 이유
Part 5ㅣ인공지능 기본법, 무엇이 처벌되나? 과태료 3천만원 적용 기준
Part 6 | 형사전자소송 시작…수사기록 전자화가 관건
Part 7 | 공동대표이사 해임,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Part 8 | 보증금 1,000만 원이면 소액임차인일까…상가 ‘환산보증금’이 기준
글 홍승권 | 판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skh@law-pan.com)
얼마 전 계약서 검토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계약서 검토 의뢰 자체는 흔한 일이지만, 부동산 매매계약서, 그것도 표준계약서대로 작성된 계약서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은 처음이었다.
의뢰 취지를 들어보니 배경은 이렇다. 거래 매물의 등기부에 저당권이 존재했다가 말소된 것으로 나오는데, 등기의 공신력이 없어 저당권이 실제로 말소된 것인지 믿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혹시 모를 분쟁에 대비해 추후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계약서를 검토하고 거래 전반을 살펴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공신력이란 공시 방법(등기 등)에 의해 공시된 내용을 믿고 거래한 자는, 그 공시 내용이 진실한 권리관계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신뢰를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쉽게 말해, 등기부를 믿고 거래했다면 나중에 등기 내용이 실제와 달랐더라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신력에는 거래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밝은 면이 있는 반면, 진정한 권리자가 희생될 수 있다는 어두운 면도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만약 위 사례에서 등기에 공신력이 인정된다면 매수인은 허위로 저당권이 말소된 것이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등기부를 믿고 거래한 자는 등기의 공신력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허위로 말소된 저당권자는 어떻게 될까. 저당권자 역시 보호받아야 할 권리자인데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물론 위 사건에서 저당권자는 은행이니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이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등기를 할 때 형식적인 심사만 거친다. 그 서류가 실제와 일치하는지에 대한 심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요건이 갖추어져 있는지만 심사한다는 것이다. 만약 공신력을 인정하려면 등기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한 실질 심사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등기에 소요되는 기간이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 아니면 등기관 수를 더 많이 늘려야 한다. 어느 쪽이든 상당한 제도적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등기부와 실제 권리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시에는 등기부도 전산화되어 있지 않아 부동산 거래 절차가 지금보다 불투명했고, 세금을 피하거나 재산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의 명의를 빌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부동산 실명법이 시행되면서 명의신탁은 법으로 금지됐고, 위반 시 과징금과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등기 전산화도 완료돼 누구나 손쉽게 등기부를 열람할 수 있게 됐고, 부동산 거래도 훨씬 투명해졌다. 등기부 역시 실제 권리관계를 상당히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 예로, 나 역시 실제로 등기부가 잘못된 사례를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법조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우리나라와 유사한 법제를 가진 여러 나라들은 이미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부동산 거래의 신뢰를 높이고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신력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공신력을 인정하도록 민법을 개정한 뒤, 유예기간을 두고 제도 정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전까지는 아직 등기에 공신력이 인정되지 않고 있으니, 만약 처음과 같은 사례에서 등기부를 믿기 어렵다면 다음 사항을 유의하자.
우선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이 가능한지를 금융기관에 문의하면 저당권 말소 여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확실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거래 상대방의 협조를 구해 직접 은행에 저당권이 말소됐는지 확인해 보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물론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납부하기 전까지는 거래 상대방과 직접 연락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중개사를 통해 협조를 구해야 한다. 계약금을 납부한 뒤라면 상대방과 직접 연락해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만약 그 과정에서 저당권이 말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계약서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계약을 해지하고 계약금의 배액을 반환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홍승권은 한국 법률사무소 판의 대표 변호사다. 그는 민사, 형사 소송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법적 쟁점을 다룬다. 또한 기술, 재산권, 규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법적 동향에 대해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