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중공업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급증하는 미국 전력 인프라 수요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은 미국 빅테크 기업 2곳과 총 3865억원 규모의 초고압변압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공급하는 제품은 미국 남부와 북부 지역에 건설되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망에 투입될 예정이다.
계약은 765kV 초고압변압기 2200억원 규모와 345kV 초고압변압기 1665억원 규모로 구성됐다. 고객사와 세부적인 공급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수주는 AI 산업 성장에 따라 데이터센터 자체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 확보가 핵심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성능 AI 연산을 위해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전력 사용량이 빠르게 늘고 있고,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과 고효율 전력기기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응해 단순한 전력기기 공급업체를 넘어 데이터센터의 전력 설비 구축부터 안정화까지 아우르는 사업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이달 초에는 데이터센터 관련 조직을 별도로 꾸렸다. 변압기와 차단기뿐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 마이크로그리드, 스태콤(STATCOM) 등 전력 안정화 설비 분야의 설계 인력을 한데 모아 데이터센터사업팀을 신설했다. 데이터센터 고객이 요구하는 전력 인프라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AI 데이터센터 시장의 특성에 맞춘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데이터센터는 일반 산업시설보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품질이 중요하고, 구축 기간을 단축하면서도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변압기 한 제품의 경쟁력뿐 아니라 현지 생산능력과 납기 대응력, 전력 품질 관리 기술까지 종합적인 역량이 수주 경쟁에서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현지 생산기반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020년 인수한 테네시주 멤피스 초고압변압기 공장의 증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증설이 완료되면 미국 내 최대 수준의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부터 공급까지 현지화 수준을 높이는 것은 최근 북미 전력 인프라 시장에서 강화되고 있는 현지 조달 및 공급망 안정화 요구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내 생산거점을 기반으로 고객과의 거리를 줄이고 납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수주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변압기에 이어 차단기 분야에서도 현지 사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7월 북미 에너지 인프라 기업 콴타와 초고압차단기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변압기와 차단기를 함께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전력기기 포트폴리오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효성중공업의 미국 시장 확대는 최근 실적과 수주 증가세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2분기 매출은 1조6870억원, 영업이익은 2643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영업이익은 약 61% 증가했다.
수주 규모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8월까지 신규 수주액은 약 9조30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주액을 넘어섰으며, 회사는 올해 연간 수주 목표를 기존 8조4000억원에서 12조원으로 높였다.
미국 초고압변압기 시장에서 쌓아온 레퍼런스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765kV급 초고압변압기 가운데 상당 물량을 공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전력망에 대한 공급 경험이 축적된 만큼 신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도 기술 신뢰성과 실적이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단기간의 유행을 넘어 미국 전력 인프라 시장의 구조적인 수요를 만들어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증설과 함께 노후 전력망 교체, 신규 송전망 구축, 전력 안정화 설비 수요까지 동시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효성중공업 역시 변압기 중심의 기존 사업에서 벗어나 초고압직류송전(HVDC), 스태콤, ESS, 마이크로그리드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전력 인프라 전반을 아우르는 솔루션 사업자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AI 시대의 전력 수요 증가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보고 변압기와 차단기뿐 아니라 전력 안정화 시스템을 포함한 토털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효성중공업을 글로벌 전력기기 시장의 선도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전략이다.
효성중공업은 앞으로 미국 현지 생산능력 확대와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병행하면서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대규모 전력 수요처를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특히 전력기기 공급과 전력 안정화 기술을 결합해 고객사의 데이터센터 구축 과정에서 필요한 전력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사업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