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도 지역에 따라 즐겨 찾는 라면이 달랐다. 가족 단위 주거지역에서는 짜파게티가 신라면을 앞섰고,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중구에서는 신라면 골드와 신라면 툼바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동네 생활권과 가까운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는 서울 전역에서 신라면의 압도적인 선호가 이어졌다.
라면 시장에서도 소비자의 생활권과 유통 채널에 따른 ‘취향 분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인기 제품을 넘어 가족 구성, 연령대, 상권 특성, 관광객 유입 등이 라면 구매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농심은 2026년 상반기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대형마트와 SSM에서 발생한 자사 라면 POS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서울 농심 라면 인기지도’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농심 영업 데이터 분석 전문팀이 실제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치구별 판매 순위를 분석한 결과다.
서울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주거 형태와 인구 구성, 상권 성격이 크게 다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부터 대학가와 업무지구, 외국인 관광객이 집중되는 관광 상권까지 소비 환경이 다양하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지역별 특성이 장보기 품목과 식품 구매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라면은 비교적 구매 빈도가 높고 조리 방식과 식사 목적에 따라 제품 선택이 쉽게 달라지는 대표적인 가공식품이다. 농심의 이번 분석은 라면 판매 데이터를 통해 서울 소비자의 지역별 장보기 특성과 브랜드 선택의 차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국민 라면’ 신라면, 서울 대형마트 15개 구에서 1위
서울 대형마트 시장에서는 신라면의 브랜드 파워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2026년 상반기 서울시 대형마트의 농심 라면 판매액을 합산한 결과 신라면은 대형마트가 운영되는 22개 자치구 가운데 15곳에서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약 70%에 달하는 자치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셈이다.
서울 전체 판매 순위에서도 신라면이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짜파게티, 얼큰한너구리, 신라면 골드, 안성탕면, 육개장사발면, 배홍동비빔면, 신라면컵, 배홍동막국수, 신라면블랙 순으로 집계됐다.
장기간 소비자에게 익숙한 스테디셀러 제품들이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신제품의 약진도 눈에 띈다. 올해 1월 출시된 신라면 골드는 출시 한 달 만에 1000만 봉 판매를 돌파한 데 이어 서울 전체 판매 순위 4위에 올랐다.
여름철 비빔면 시장을 겨냥한 배홍동 브랜드도 존재감을 나타냈다. 배홍동비빔면은 7위, 올해 선보인 배홍동막국수는 9위를 기록하며 TOP 10에 두 제품을 올렸다.
업계에서는 최근 라면 시장이 전통적인 매운맛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취향과 식사 상황을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기존 인기 브랜드의 충성도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맛과 조리법을 앞세운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전략이 시장 확대의 핵심으로 꼽힌다.
<>가족 소비부터 ‘모디슈머’까지… 짜파게티가 신라면 제친 지역도
지역별로 살펴보면 소비자 취향의 차이가 더욱 뚜렷했다. 양천구와 노원구, 성북구, 성동구, 용산구, 광진구 등 6개 자치구 대형마트에서는 짜파게티가 신라면을 제치고 농심 라면 판매 1위에 올랐다.
양천구와 노원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가족 단위 가구가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2024년 기준 2인 이상 가구 비중은 양천구가 71.7%, 노원구가 67.3%로 서울 평균 60.1%를 웃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지역에서 짜파게티가 간편한 한 끼 식사를 넘어 주말이나 가족 외식 대신 즐기는 ‘별식’ 성격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판매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성북구와 성동구, 용산구, 광진구 등에서는 젊은 소비층의 영향도 주목된다. 대학가와 업무지구, 상업시설이 밀집한 지역 특성상 20~30대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많고, 라면에 다양한 재료를 더하거나 기존 조리법을 변형하는 이른바 ‘모디슈머’ 소비도 활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라면이 더 이상 단순한 간편식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식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업계 분석과도 맞닿아 있다.
<>외국인 관광객 많은 중구, ‘글로벌 신라면’이 대세
중구는 서울 전체와 다른 소비 패턴이 나타났다. 중구 대형마트에서는 신라면 골드가 1위, 신라면 툼바가 2위를 기록했다. 서울 전체 판매 순위에서 4위에 오른 신라면 골드가 중구에서는 정상에 올랐으며, 서울 전체 TOP 10에는 들지 못한 신라면 툼바도 중구에서는 상위권을 차지했다.
중구는 명동과 남대문, 동대문, 서울역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대형마트 역시 지역 주민의 장보기 공간인 동시에 관광객들이 한국 식품을 구매하는 쇼핑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구의 라면 판매 순위에는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의 구매 수요가 함께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신라면 골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익숙한 닭고기 국물에 한국적인 매운맛을 결합한 제품이며, 신라면 툼바는 크림과 치즈의 부드러운 풍미를 매운맛과 결합한 제품이다. 해외 소비자에게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맛을 앞세운 제품이라는 점에서 관광 상권의 소비 특성과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K-푸드에 대한 해외 관심이 커지면서 국내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의 구매가 식품 유통업계의 새로운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라면은 가격 부담이 비교적 낮고 휴대가 쉬우며 한국을 대표하는 먹거리라는 인식이 강해 관광객 대상 기념품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품목으로 꼽힌다.
<>생활권 가까운 SSM에서는 ‘검증된 맛’ 신라면 선호
대형마트와 달리 SSM에서는 지역별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 25개 자치구의 모든 SSM에서 신라면이 농심 라면 판매 1위를 차지했다.
SSM은 주거지역과 가까워 소비자가 필요한 식료품을 수시로 구매하는 생활밀착형 유통 채널이다. 대형마트가 주말이나 특정 시기에 여러 품목을 한꺼번에 구매하는 장보기 성격이 강하다면, SSM은 일상적으로 필요한 식품을 반복 구매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SSM에서는 새로운 제품을 시험하기보다 평소 익숙하게 소비해 온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적인 브랜드 인지도와 높은 소비자 충성도를 확보한 신라면이 모든 자치구에서 1위를 차지한 것도 이 같은 유통 채널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최근 식품 소비가 ‘대중적인 인기’와 ‘개인화된 취향’으로 동시에 양분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온라인과 대형마트에서는 새로운 제품과 이색적인 맛을 경험하려는 수요가 커지는 반면,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는 익숙한 브랜드를 빠르게 구매하는 소비가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다.
농심 관계자는 “서울 25개 자치구의 판매 데이터를 통해 지역의 인구와 상권, 유통 채널에 따라 소비자들의 라면 선택이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제품과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선택지를 제공하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분석은 라면 시장의 ‘1등 브랜드’가 존재하더라도 소비자의 실제 선택은 생활권과 구매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식품업체들이 전국 단위의 획일적인 제품 전략에서 벗어나 지역별 소비 데이터와 유통 채널 특성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데이터 기반 마케팅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