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패권 경쟁이 국가 연합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대만을 대표하는 통신기업들이 대규모 공동 투자에 나선다. 단순한 투자 펀드를 넘어 AI 시대 핵심 인프라와 차세대 기술을 함께 육성하는 전략적 협력체라는 점에서 향후 동아시아 기술 연대의 상징적 사례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SK텔레콤은 10일 일본 도쿄 NTT 본사에서 일본 NTT, 대만 중화텔레콤과 함께 '아이온(IOWN) AI 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펀드 규모는 5억 달러(약 7600억원) 수준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3사는 펀드 운용을 위해 실리콘밸리와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투자 플랫폼 카탈라이트 캐피털을 설립하고 글로벌 AI 스타트업 발굴에 나선다. 투자 대상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와 AI 반도체, 광통신, AI 소프트웨어, 산업별 AI 서비스 기업 등 AI 산업 전반에 걸쳐 있다.
특히 AI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와 반도체 공급망 확보가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만큼 전력 효율화 기술과 액체 냉각 시스템, 차세대 GPU·NPU, 초고속 광통신 분야가 주요 투자처가 될 전망이다.
업계는 이번 펀드가 단순한 벤처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와 플랫폼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기업들이 공동 투자와 기술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 축을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파급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한국의 AI 서비스·반도체 기술, 일본의 네트워크 및 광통신 기술, 대만의 ICT 제조 역량이 결합되면서 AI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 개별 국가나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규모 AI 투자 부담을 분산하는 동시에 혁신 기술 확보 속도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산업계에는 AI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기회 확대라는 효과도 기대된다. 투자 대상 기업들은 자금 지원뿐 아니라 SK텔레콤, NTT, 중화텔레콤의 통신망과 고객 기반을 활용해 기술 검증과 사업화를 진행할 수 있어 해외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구축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도 기대된다. 특히 펀드 참여를 검토 중인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기업에는 차세대 AI 메모리와 연산칩 시장 확대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일 경제협력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최근 공급망과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양국 기업 간 협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이번 펀드는 AI라는 미래 산업을 중심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향후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라우드, 로봇,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로 협력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NTT는 현재 소니, 도시바 등 일본 주요 기업을 포함해 약 20개 기업이 펀드 출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참여 기업이 늘어날 경우 투자 규모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정재헌 SK텔레콤 CEO는 "그동안 글로벌 AI 기업과 스타트업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 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며 "AI 산업 생태계 성장과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시마다 아키라 NTT CEO는 "AI 네이티브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글로벌 기술과 파트너십의 결합이 필수적"이라며 "혁신 기업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산업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린롱츠 중화텔레콤 사장도 "국경을 초월한 협력을 통해 첨단 기술 상용화를 가속화하고 차세대 AI 생태계 구축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경쟁이 이제는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와 생태계 간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번 펀드는 동아시아가 글로벌 AI 산업의 새로운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