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Korea IT Times 공동취재팀
난강(Nangang) 전시구역에서 신의(信義) 지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COMPUTEX 2026 기간 동안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셔틀은 행사장을 오가는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AI와 반도체, 로보틱스 분야 관계자들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모습은 올해 COMPUTEX의 높은 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TWTC(Taipei World Trade Center) Exhibition Hall 1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대형 간판으로 설치된 ‘AI Robotics Zone’과 ‘ePaper Industry Zone’이었다. 올해 처음 마련된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관을 넘어 AI가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체험형 전시 무대에 가까웠다.
특히 Physical AI(물리 AI)와 로보틱스 기술이 제조·물류·모빌리티·스마트시티 분야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시연이 이어지면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부스에는 AI 전문가와 글로벌 파트너 기업 관계자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높은 관심이 집중됐다.
E Ink Prism, 자동차 보닛에 ‘살아있는 색상’을 구현하다
TWTC Hall 1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곳 중 하나는 전자종이(ePaper) 기술 기업 E Ink 부스였다.
E Ink는 이번 COMPUTEX에서 BMW iX3 Flow Edition의 실제 보닛(hood) 구조물을 공개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계 최초로 E Ink Prism 기술을 자동차 구조용 바디 패널에 직접 통합한 사례다.
이 차량은 2026 베이징 오토쇼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BMW의 엄격한 품질·내구성 평가를 통과했으며, 업계에서는 사실상 양산 직전 단계인 ‘시리즈 레디(Series Ready)’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운전자는 차량 내 설정을 통해 버튼 하나만으로 8가지 애니메이션 패턴을 선택할 수 있다. 중국 전통 건축물의 실루엣부터 기하학적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패턴이 차량 외관에 구현되면서 자동차가 하나의 움직이는 디지털 캔버스처럼 변모한다.
이는 2022년 CES에서 공개된 BMW iX Flow 콘셉트카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당시 차량은 전자종이 필름을 차체 외부에 랩(wrap) 형태로 부착하는 구조였다. 반면 이번 iX3 Flow Edition은 전자종이 기술을 차체 구조 자체에 통합함으로써 내구성과 양산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현장에서 공개된 또 다른 시연은 컬러 체인지(Color Change) 콘셉트카였다.
이 차량은 3차원 곡면과 불규칙한 표면에 프로그래머블 ePaper를 적용해 차체뿐 아니라 휠 림 영역까지 소프트웨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색상과 디자인을 변경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E Ink 관계자는 현장에서 “ePaper는 더 이상 단순한 디스플레이 기술이 아니라 스마트 표면(Smart Surface)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 심층 분석, ‘스마트 서페이스’ 시대의 시작
E Ink Prism의 핵심 기술은 전기영동(Electrophoretic) 방식이다.
미세캡슐 내부에 포함된 대전 입자가 전기 신호에 따라 이동하면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구조다. LCD나 OLED와 달리 화면을 유지하는 데 지속적인 전력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술적 강점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극저전력 특성이다. 이미지가 한 번 형성되면 전력 소비가 거의 없어 전기차 배터리 효율 측면에서 유리하다.
둘째, 높은 유연성이다. 평면뿐 아니라 곡면과 복잡한 3D 표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셋째, 자동차 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내구성이다. 자외선, 극한 온도 변화, 외부 충격, 세차 환경 등 다양한 조건에서 BMW의 검증 절차를 통과했다.
넷째, 지속 가능성이다.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고 운용 과정의 전력 소비 역시 매우 낮다.
현재는 그레이스케일 중심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있지만, 업계에서는 풀컬러 버전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MW 외에도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들이 관련 기술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기술이 본격 상용화될 경우 자동차 산업은 ‘고정된 외관 디자인’에서 ‘개인화·상황 적응형 디자인’ 시대로 전환될 수 있다. 향후 차량 외부 패널이 단순 장식 요소를 넘어 주행 정보, 경고 메시지, 상업용 디스플레이 기능까지 수행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건축 외벽, 가구,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스마트 서페이스’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AI Robotics Zone,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현장
ePaper Industry Zone과 함께 TWTC Hall 1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핵심 공간은 AI Robotics Zone(Robotics & Edge AI Pavilion)이었다.
인텔(Intel)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이 전시관에는 로봇 공급망 전반을 아우르는 기업들이 참가해 차세대 Physical AI 기술을 시연했다.
HIWIN은 Dual-arm Logistics Robot을 선보이며 정밀 물류 작업과 협업 프로세스를 실시간으로 시연했다. 복수의 로봇 팔이 동시에 움직이며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은 스마트 물류 자동화의 현재 수준을 보여줬다.
Solomon은 NVIDIA 플랫폼과 결합한 AI 로봇 학습 기술을 공개했다. 머신비전과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복잡한 작업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시연하며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YUAN High-Tech는 NVIDIA Omniverse와 Jetson, IGX Thor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시티 디지털 트윈과 로보틱스 연계 솔루션을 전시했다. 가상 공간에서 학습한 데이터를 실제 로봇 동작과 연동하는 과정이 소개됐다.
Ability Enterprise는 6축 협동 로봇암과 Physical AI 솔루션을 공개하며 스마트 제조, 상업시설, 공공공간, 스마트 주차 분야의 적용 사례를 선보였다.
NEXCOM은 Inventec과 공동으로 개발한 Dual-arm AI Perception & Collaboration 시스템을 공개했다. 비전 인식과 고정밀 실시간 모션 제어 기술을 통합해 조립 공정을 수행하는 모습이 시연됐다.
AAEON은 휴머노이드 로봇과 머신비전, 에이전틱 AI(Agentic AI)를 결합한 제조 자동화 솔루션을 소개했다. PCB 검사 공정에서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Physical AI가 제조업에 미칠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평가됐다.
이들 전시의 공통점은 단순 자동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로봇 팔을 움직이는 수준을 넘어 AI가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상황을 판단하며, 행동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모습을 실제 환경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종합 분석, 대만이 그리는 피지컬 AI 산업 지도
TWTC Hall 1은 COMPUTEX 2026의 또 다른 중심축이었다.
E Ink가 선보인 색상 변화 자동차 기술은 자동차 산업의 디자인 개념 자체가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저전력, 지속 가능성, 개인화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하며 스마트 서페이스라는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BMW와의 협력이 단순 콘셉트 단계가 아니라 실제 양산을 앞둔 수준으로 진전됐다는 점은 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AI Robotics Zone은 대만 제조업이 AI 시대에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HIWIN, Solomon 등 기존 산업 강자들이 NVIDIA의 AI 플랫폼과 결합하면서 단순 부품 공급 기업을 넘어 시스템 통합 사업자로 확장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TWTC Hall 1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래의 공장과 도시, 자동차는 단순히 연결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하며 움직이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은 GPU와 서버 중심의 AI 인프라 강국을 넘어 이제는 피지컬 AI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시스템 통합 역량까지 확보하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도 시사점은 적지 않다.
로봇 부품, Edge AI 소프트웨어, 시스템 통합, 스마트 서페이스 소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 기회가 확대되고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TWTC Hall 1에서의 하루는 AI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를 넘어 현실 세계로 내려오는 순간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 현장이었다.
COMPUTEX 2026은 단순한 IT 전시회를 넘어, 피지컬 AI 시대의 산업 전환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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