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인공지능 전환(AX)의 성패를 단순한 AI 기술 도입이 아닌 업무 방식 자체를 얼마나 과감하게 재설계하느냐에서 찾고 있다. AI 도입 초기에는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이른바 ‘불편함의 골짜기’를 넘어설 경우 기존 방식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생산성 혁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정재헌 CEO가 지난 1일 서울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대학생과 대학원생 300여 명을 대상으로 ‘AI 시대의 선택과 기회’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강연은 SKT와 서울대가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AI 공동과정의 첫 수업으로 마련됐다. 1987년 서울대 공법학과에 입학한 정 CEO는 약 40년 만에 강연자로 모교 강단에 섰다.
정 CEO는 “기술을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AI 전환의 최전선에 있는 한 기업이 지금 무엇을 고민하는지 나누기 위해 왔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AI가 바꾼 ‘시간의 밀도’…소버린 AI 중요성 강조
정 CEO는 AI가 개인과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밀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하루라도 생산성 측면에서는 240시간, 2400시간에 해당하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 확산 속도 역시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자동차와 휴대전화 등 이전 혁신 기술보다 생성형 AI가 훨씬 빠르게 대중화되면서 기업의 경쟁 방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 CEO는 AI 경쟁이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의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핵심 AI 기술을 외부에 의존할 경우 가격과 이용 조건 등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자체 기술 역량을 갖추는 ‘소버린 AI’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AI 도입하면 바로 생산성 향상?…‘AX의 J커브’ 제시
이날 정 CEO는 SKT의 AI 전환 과정에서 도출한 개념으로 ‘AX의 J커브’를 제시했다.
AI를 도입하면 곧바로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실제 조직에서는 재교육과 업무 프로세스 재설계, 데이터 정비, 조직 변화 등이 필요해 초기 생산성이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견디고 업무 구조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면 일정 시점을 지나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CEO는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낯설게 보기’, ‘극한 마주하기’, ‘불편해지기’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낯설게 보기’는 기존 업무가 반드시 현재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는 접근법이다. SKT 역시 업무 과정에서 “AI를 전제로 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극한 마주하기’는 기존 방식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의 목표를 설정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다. SKT가 제한된 GPU 자원으로 6880억 파라미터 규모의 독자 AI 모델 ‘A.X K2’를 개발한 사례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500시간 걸리던 AI 전환 과정, 결국 1시간으로
‘불편해지기’는 AI 전환 초기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생산성 저하를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 CEO는 기존에 약 50시간이 필요했던 시스템 수정 업무를 AI로 전환한 SKT 개발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처음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수백 차례 검증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500시간 이상이 투입됐지만, 현재는 같은 업무를 약 1시간 만에 처리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정 CEO는 “불편함의 골짜기 앞에서 돌아서면 영원히 곡선의 왼쪽에 머물지만 이를 견뎌낸 조직은 어느 순간 J자로 꺾여 올라간다”며 “익숙한 비효율을 넘어 벼랑 끝에서 극한을 마주할 때 비로소 J커브의 초생산성 혁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 시대에도 최종 판단은 사람의 몫
정 CEO는 AI 활용 능력이 중요해질수록 인간의 역할 역시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AI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 같은 시대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주도적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통찰력과 공감 능력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이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한 뒤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기술과 산업 등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할 수 있어야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 CEO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시한 AI 시대 인재의 조건인 ‘생각 근육’, ‘적응 근육’, ‘공감 근육’, ‘신체 지능’도 소개했다.
그는 “네 가지 모두 코딩 능력이 아니다”며 “기술은 AI가 점점 더 잘할 것이기에 사람만이 가진 근육이 인재의 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전에는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오늘 우리는 ‘AI와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묻고 있다”며 “가치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은 끝까지 사람의 몫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