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시그널] AI가 자본을 빨아들인다…연준 멈춰도 장기금리는 오른다 
[투데이 시그널] AI가 자본을 빨아들인다…연준 멈춰도 장기금리는 오른다 
  • 정연수
  • Published 2026.08.20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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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AI 채권 발행 1940억 달러·엔비디아 1050억 달러 보증…정책금리와 자본비용의 분리 속 한국은 AI 메모리 호황으로 성장률 3.5% 전망

 

인공지능(AI)이 세계 자본시장의 새로운 대형 수요자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GPU, 전력망을 구축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의 자금이 채권시장과 사모신용으로 몰리면서, AI 투자 경쟁의 승부는 이제 기술을 넘어, 누가 장기 자본을 확보하고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방향과 시장금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로이터가 8월 12~17일 실시한 조사에서 경제 전문가 대다수는 연준이 현재 3.50~3.75%인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동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이번 주 5.3%를 넘어 2007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장기금리 상승을 AI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인플레이션 우려, 해외 투자자의 미국 국채 수요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기록적인 AI 투자로 인한 민간의 자금 수요가 새로운 압력으로 더해지고 있다는 점은 이전과 다른 변화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전력 인프라로 대규모 자본이 몰리면서,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에도 장기금리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있다. / Korea IT Times

 

AI가 자본을 움직이기 시작했나

아마존(Amazon), 알파벳(Alphabet), 메타(Meta), 오라클(Oracle)은 올해 7월 7일까지 약 1940억 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2025년 한 해 동안의 약 1080억 달러보다 79% 많다.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포함한 5개 하이퍼스케일러의 채권 발행이 올해 약 2500억 달러, 2027년에는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AI 관련 차입을 더 넓게 보면 규모는 더욱 커진다. 로이터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올해 AI 인프라 관련 차입이 최근 약 2200억 달러에 달했으며, 미국 30년물 물가연동 실질금리도 3% 안팎으로 18년 만의 높은 수준에 접근했다고 분석했다. 정부와 AI 기업이 동시에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면서 제한된 장기 자본을 놓고 경쟁하는 이른바 ‘자본 희소성(capital scarcity)’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채권시장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하이퍼스케일러 채권에 대한 투자자 주문배율은 지난 2월 약 5배에서 7월에는 2배 아래로 떨어졌다. 신규 채권을 시장이 소화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면서 기업의 실제 자금 조달 비용도 올라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책금리와 자본비용의 차이가 중요해진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미국 국채금리와 회사채 스프레드가 상승하면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부담하는 장기 금융비용은 높아질 수 있다. AI 기업에는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것 못지않게 시장에서 수십 년짜리 자본을 얼마에 조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8월 19일 알파벳이 호주 채권시장에서 처음으로 55억 호주달러(약 38억 9000만 달러)를 조달한 것도 이 흐름을 보여준다. 올해 주요 빅테크의 AI 투자가 73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막대한 현금 창출력을 가진 기업들조차 미국 달러 채권을 넘어 세계 자본시장으로 조달처를 넓히고 있다.

엔비디아의 1050억 달러 보증이 보여주는 AI 금융

엔비디아(Nvidia)의 움직임은 AI 자본 경쟁이 어디까지 확대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엔비디아는 오픈AI(OpenAI)가 사용할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터센터의 20년 임대계약을 지원하기 위해 최대 1050억 달러의 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소프트뱅크(SoftBank) 계열 SB에너지(SB Energy)가 개발하는 이 시설은 최종 8기가와트(GW) 규모를 목표로 하며, 우선 800메가와트(MW)가 2028년까지 가동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SB에너지에도 15억 달러를 직접 투자한다.

이 거래가 특별한 이유는 세계 최대 AI 칩 공급자가 자신의 GPU를 사용할 고객의 데이터센터 금융 위험까지 일부 부담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골드만삭스, 아폴로(Apollo), 블랙스톤(Blackstone), 블랙록(BlackRock), 브룩필드(Brookfield), KKR 등과 5000억 달러 이상을 AI 인프라에 연결하는 금융 플랫폼도 추진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보험사와 자산운용사 등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사모신용과 채권을 결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구조는 이렇다. AI 모델이 더 많은 컴퓨팅 수요를 만들고,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그 수요를 처리하기 위해 GPU와 전력설비를 확보한다. 필요한 자본이 너무 커지자 GPU 공급자인 엔비디아가 금융기관과 함께 데이터센터의 자금조달까지 지원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이 구조가 커질수록 순환금융(circular financing)에 대한 검증도 필요해진다.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 금융을 지원하고, 그 데이터센터가 엔비디아 GPU를 구매하며, 그 판매가 다시 엔비디아의 매출로 돌아오는 연결고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이번 1050억 달러 보증이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순환 구조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발전소와 항공기, 통신망 같은 자본집약 산업에서도 공급자 금융과 장기 구매계약,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일반적이다. AI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막대한 금융지원으로 만들어진 컴퓨팅 생산능력이 충분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느냐다.

그 답이 긍정적이면 현재의 차입은 AI 산업 인프라를 앞당기는 자본이 된다. 반대로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AI 서비스의 수익화보다 빨라지면 높은 이자비용과 GPU 감가상각, 전력비가 동시에 재무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AI 자본 붐, 한국에서는 반도체 수익으로 전환

한국에서는 같은 AI 자본 붐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부는 AI 반도체 호황을 배경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을 3.0%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는 5년 만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무디스(Moody’s)는 지난 2월 1.8%였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월 2.5%로 높인 데 이어, 최근 다시 3.5%로 1.0%포인트 상향했다. 불과 6개월 만에 전망치를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정부 전망치 3.0%와 주요 투자은행 8곳의 평균 전망치 3.2%도 웃돈다. 무디스는 반도체 호황과 견조한 수출을 주요 배경으로 들며, AI 메모리 수요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과 현금창출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S&P글로벌 역시 AI 수요와 제한적인 공급 확대 때문에 메모리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한국 기업들이 HBM과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현재의 슈퍼사이클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과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함께 보면 AI 투자의 두 얼굴이 선명해진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와 전력을 건설하기 위한 막대한 자본 수요가 채권시장까지 움직이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그 인프라에 들어가는 HBM과 첨단 메모리가 수출과 경제성장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메모리 공급자의 위치에만 머문다면 AI 투자에서 발생하는 더 큰 금융·인프라 부가가치는 미국의 빅테크와 자산운용사, 사모자본이 가져갈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능력 확대와 함께 전력·데이터센터·첨단패키징·장기금융을 연결하는 산업 구조가 필요한 이유다. 

AI 시대에는 돈이 많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수조 달러의 자본을 지속적으로 조달하고, 그 자본을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전력이라는 실제 생산능력으로 전환한 뒤, 다시 충분한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연준이 멈춰도 장기금리가 오르는 지금, AI 경쟁의 새로운 비용은 GPU 가격이 아니라 ‘자본의 가격’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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