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주요 기관들이 잇달아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증과 수출 회복세가 예상보다 강하게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가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8일 발표한 '7월 세계경제 수정전망(World Economic Outlook Update)'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지난 4월 제시했던 1.9%보다 0.7%포인트 상향한 수치로, 이번 수정 대상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조정이다.
내년 성장률 전망도 기존 2.1%에서 2.5%로 높였다. 전망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지난해 1%대 성장에서 벗어나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IMF는 한국의 성장세를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AI 산업 확대와 반도체 수출 증가를 꼽았다. 한국은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등 AI 하드웨어 수출 경쟁력이 높은 국가로, 글로벌 AI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예상보다 강했던 1분기 성장률도 전망 상향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비슷한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같은 날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성장률을 IMF와 동일한 2.6%로 상향 조정했다. ADB는 AI 관련 수출 확대가 향후 2년간 한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국제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 불안은 여전히 주요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한국 성장률을 기존보다 크게 높이며 글로벌 기술 투자 확대의 수혜를 반영했다. 해외 투자은행들도 잇따라 전망치를 조정하고 있다. JP모건은 최근 한국 성장률 전망을 큰 폭으로 상향했고, 영국의 캐피털이코노믹스와 ING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가 4% 안팎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전망 변화의 배경으로 수출 회복을 꼽는다. AI 반도체를 중심으로 정보기술(IT) 제품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수출 증가세가 예상치를 웃돌고 있고, 이에 따라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도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반도체 업황 개선이 기업 투자와 설비 확대로 이어질 경우 성장 모멘텀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계는 한국 경제가 세계 AI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성장 잠재력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경쟁이 이어지면서 관련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에너지 가격 상승,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 등 대외 변수가 여전히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AI 투자 사이클이 예상보다 둔화될 경우 수출 증가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 역시 다음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추가로 상향 조정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이후 성장률 전망을 여러 차례 높여 왔으며, 최근 발표된 주요 경제지표도 예상보다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한국 경제는 내수보다 수출이 성장을 이끄는 전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며 "AI 산업 투자 확대가 이어진다면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