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엔비디아(NVIDIA),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앤트로픽(Anthropic),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AI 빅테크와 AI 인프라 협력을 대폭 확대하며 대한민국 AI 인프라 전략의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 AI 메모리, 초대형 데이터센터, AI 팩토리 구축을 아우르는 장기 협력 체계를 구축하면서, 한국을 아시아 AI 인프라 허브로 육성하려는 전략이 한층 구체화됐다는 평가다.
SK는 7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K-AI Summit'에서 글로벌 AI 기업들과 AI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등 핵심 인프라 분야 협력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AWS와는 별도 회동을 통해 울산 AI 데이터센터 공동 구축 경험을 기반으로 국내 AI 인프라 협력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협력은 SK가 지난 6월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실행 기반을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국 단위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AI 반도체 벨트 조성 등 국내 프로젝트에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 기업들이 직접 참여하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SK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 확대는 AI 메모리를 비롯한 AI 인프라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AI 전략에도 중요한 추진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와 AI 인프라 전방위 협력…AI 팩토리부터 차세대 메모리까지
이번 협력의 핵심은 엔비디아와 체결한 포괄적 협력이다. 양사는 AI 팩토리 구축과 차세대 AI 메모리 공급을 포함하는 의향서(LOI)를 체결하며 AI 인프라 전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SK텔레콤은 국내 최대 2GW 규모 AI 팩토리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와 AI 팩토리 플랫폼인 DSX를 도입한다. 여기에 SK하이닉스의 차세대 HBM4가 적용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시스템 베라 루빈(Vera Rubin) 기반 컴퓨팅 인프라를 활용해 2027년부터 초대형 AI 컴퓨팅 시설을 단계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소버린 AI, 피지컬 AI, 에이전틱 AI, 기업용 AI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AI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고,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수요 증가에도 공동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도 엔비디아와 장기 AI 메모리 협력을 확대한다. 양사는 대규모 언어모델(LLM) 학습부터 에이전틱 AI, 피지컬 AI까지 확대되는 AI 컴퓨팅 환경에 맞춰 HBM을 비롯한 차세대 AI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최적화하기로 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기술, 산업 기반을 갖춘 AI 강국으로 성장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엔비디아는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와 함께 한국의 차세대 AI 팩토리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태원 SK 회장은 "AI 시대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사용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지능(Intelligence)을 생산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AI 팩토리를 구축해 한국이 AI 소비국을 넘어 AI 혁신을 창출하는 글로벌 허브가 되도록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앤트로픽·AWS와 협력 확대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AI 서버용 메모리의 장기 공급 협력에도 합의했다.
양사는 AI 워크로드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차세대 서버용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실제 데이터센터 환경에서 검증을 거쳐 AI 서버 메모리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생성형 AI 기업 앤트로픽과도 한국 내 기가와트(GW)급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포괄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23년 전략적 투자 이후 이어온 협력을 AI 인프라 분야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앤트로픽은 SK텔레콤의 국내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참여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AWS와도 협력 범위를 확대한다. 양사는 울산 AI 데이터센터 공동 구축 경험을 바탕으로 SK텔레콤의 국내 데이터센터 구축 역량과 AWS의 글로벌 클라우드 및 AI 플랫폼을 결합해 국내 주요 거점으로 AI 인프라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기가와트급 AI 컴퓨팅 용량 확보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최태원 회장은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도 만나 AI 메모리와 AI 인프라 구축 등 장기 협력 방향을 논의했다. 양사는 지난해 AI 메모리 공급과 서남권 AI 데이터센터 구축 협력 이후 전략적 파트너십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AI는 아직 초기 단계"…최태원 회장이 제시한 3대 과제
최태원 회장은 이날 K-AI Summit 기조연설에서 최근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한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국민 모두가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AI 네이티브 국가' 구현이다. 그는 한국을 세계 최대 AI 테스트베드로 만들어 AI 활용을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AI 메모리 생산 확대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통해 AI 연산 비용(토큰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이는 AI 서비스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셋째는 AI 거버넌스를 구축해 일자리 변화와 환경 문제 등 AI 확산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최 회장은 "AI는 아직 초기 단계(Early Stage)에 불과하다"며 "한국은 AI 메모리와 AI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연결하는 글로벌 AI 인프라 허브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점 | 한국 AI 경쟁력, 이제는 '생태계 구축' 단계
이번 실리콘밸리 협력은 개별 기업 간 사업 제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I 경쟁의 중심축이 반도체에서 AI 컴퓨팅 인프라, 전력, 데이터센터, AI 메모리, 클라우드 생태계로 빠르게 이동하는 가운데, SK는 글로벌 빅테크와의 연합을 통해 이러한 가치사슬 전반에 참여하는 전략을 본격화했다.
특히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AWS, 앤트로픽, 오픈AI 등 세계 AI 생태계를 주도하는 기업들과의 협력은 한국이 단순한 AI 기술 소비국이 아니라 AI 인프라 공급국이자 아시아 AI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향후 관건은 계획된 AI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 구축이 실제 투자와 전력 인프라, 규제 개선, 인재 확보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은 개별 기업의 기술력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 생태계 전체의 실행력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