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3부 |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
4부 | 회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람
5부 | 폭행을 당했을 경우 유의할 점
6부 | 형사합의금, 얼마가 적당한가
7부 | 술자리 이후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준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8부 | 프리랜서와 퇴직금
9부 | 사업상 자금 융통으로 채권을 양도하는 경우 주의할 점
10부 | 외국인 배우자가 도망갔을 때, 이혼할 수 있을까?
11부 | 집주인이 수리를 미룬다면…임대차 계약 해지 가능할까?
12부 | 원사업자가 잠적한 경우, 수급사업자는 대금을 받을 수 있을까?
13부 | 경찰 조사 처음 받는다면 알아야 할 것들
14부 | 토지거래허가구역 계약, 허가 전에도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15부 | 범죄 목적을 숨기고 들어간 타인의 주거, 주거침입인가?
16부 | 타인을 사칭하여 인스타 계정을 개설하는 경우도 처벌될 수 있다
글 | 홍승권 변호사, 법무법인 판 (skh@law-pan.com)
남녀가 데이트할 때 어깨를 감싸 안거나 회식 자리에서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고소를 당했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상담을 받는 경우가 있다. 바로 강제추행의 성립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다.
형법 제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조문만 보면 폭행 또는 협박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상당한 정도의 강제성이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오랫동안 판례도 그렇게 해석했다. 추행 행위 자체가 곧 폭행에 해당하는 이른바 기습추행이라는 예외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이라고 하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2023년 9월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를 변경했다. 사촌 오빠가 피해자를 양팔로 끌어안아 침대에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탄 사안에서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은 아니라고 보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강제추행죄의 폭행은 신체에 대한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를, 협박은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의 고지를 뜻할 뿐, 그 이상의 강도는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법원은 또한 “종래의 판례 법리는 강제추행죄의 범죄구성요건에 부합하지 않고,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인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은 형법상 폭행죄 또는 협박죄에서 정한 ‘폭행 또는 협박’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명히 정의돼야 하고, 이는 판례 법리와 재판 실무의 변화에 비춰 볼 때 법적 안정성 및 판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이 판결 이후 강제추행죄의 성립 범위는 이전보다 넓어졌다. 이후 나타난 강제추행 사례로는 피해자의 엉덩이를 친 경우, 피해자의 팔과 허리 부분을 잡은 경우, 피해자의 엉덩이를 누른 경우 등이 있다. 또한 강제추행에서는 추행한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많은 의뢰인이 자신의 행동을 강제추행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는 실제로 피해자의 동의가 있어 강제추행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나, 피해자가 다음 날 평소처럼 출근했다거나 이미 잡혀 있던 다음 약속 장소에 함께 갔다는 사정을 들어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으므로 추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과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해자가 다음 날 평소처럼 출근했다거나 이미 잡혀 있던 다음 약속 장소에 함께 갔다는 사정만으로 추행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강제추행은 다른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많은 경우 명확한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피해자의 진술이 범죄의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이것이 피해자의 진술만 있으면 유죄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건 전후의 정황 등을 근거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는지는 여전히 엄격하게 심리된다. 따라서 강제추행 사건의 피의자나 피해자라면 당시의 상황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다시 기록해 두고, 사건 직후의 메시지와 통화 기록, CCTV 확보 가능성 등 관련 정황을 최대한 빠르게 확보하는 게 좋다.
필자 소개
홍승권 변호사는 법무법인 판 소속 변호사로 민·형사 소송을 비롯해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제기되는 다양한 법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술 혁신과 재산권 질서, 규제 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