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3부 |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
4부 | 회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람
5부 | 폭행을 당했을 경우 유의할 점
6부 | 형사합의금, 얼마가 적당한가
7부 | 술자리 이후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준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8부 | 프리랜서와 퇴직금
9부 | 사업상 자금 융통으로 채권을 양도하는 경우 주의할 점
10부 | 외국인 배우자가 도망갔을 때, 이혼할 수 있을까?
11부 | 집주인이 수리를 미룬다면…임대차 계약 해지 가능할까?
글 | 홍승권 변호사, 법무법인 판 변호사(skh@law-pan.com)
세입자로 살다 보면 한 번쯤 천장에서 물이 새는 일을 겪게 된다. 운이 없다면 집주인은 "곧 고친다"는 말만 반복하고, 몇 주가 지나도 아무런 조치가 없을 수 있다. 이럴 때 임차인은 계약 해지에 앞서 직접 수리한 뒤 비용을 청구하거나, 그만큼 월세를 감액해 달라고 요청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하자의 정도가 심하다면 임대인의 수선 의무를 근거로 계약을 해지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임대인의 책임인지, 그리고 어떤 조건을 갖춰야 계약 해지가 인정되는지 정리해 본다.
임대인은 집을 빌려준 뒤에도 임차인이 정상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집 상태를 유지해 줄 의무가 있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계약 기간 동안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대법원은 임차인이 큰 비용 없이 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하자는 임대인의 책임이 아니지만, 방치할 경우 계약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하자라면 임대인이 수리해야 한다고 본다.
임대차 계약 해지가 가능한 수준의 수선의무 불이행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누수나 보일러 고장 등은 대부분 이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곰팡이처럼 책임이 갈리는 경우도 있다. 세입자의 환기 부족 때문인지, 건물의 단열 부실 때문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아주 애매한 경우도 있다. 누수가 발생했지만 임차인이 수리를 거부해 피해가 더 커진 경우, 또는 임대인이 수선을 해주려고는 하지만 임차인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경우다. 예를 들어 다시 누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부분적인 보수만 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로 분쟁은 이러한 애매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여기에 보증금이라는 큰 금액이 걸려 있기 때문에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임대인의 수선의무 불이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판단할 때에는 하자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즉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인지, 임대인과 임차인이 그동안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수리에 필요한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등 다양한 간접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그렇다면 하자가 발생한 경우,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려면 먼저 상당한 기간을 정해 수리를 요구하는 최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통화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계속 수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하면 된다. 다만 추후 입증을 위해서는 내용증명을 보내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임대차 계약의 해지는 신중해야 한다. 분쟁이 예상된다면(실제로는 대부분 분쟁으로 이어진다) 수리 요청 내역부터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내용증명을 통해 기간을 정해 수리를 요구하는 것이 좋다. 임대인의 수선 의무 자체가 다툼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짐을 빼기 전에 변호사와 상담해 계약 해지 요건을 충족하는지 미리 확인해두기를 권한다.
필자 소개
홍승권 변호사는 법무법인 판 소속 변호사로, 민·형사소송을 비롯해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제기되는 다양한 법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술 혁신과 재산권 질서, 규제 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