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다 기획…AI 영상의 새로운 방향 제시
“좋은 음악, 시간 지나도 다시 살아나야”
글로벌 음원 제작 및 유통 시장에서 활동해온 사운드리퍼블리카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영상 제작 영역까지 확장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누적 투자 50억 원을 유치한 사운드리퍼블리카는 콘텐츠 제작 역량을 한층 끌어올리는 동시에 ‘실사구AI’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영상 제작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영상을 생성하는 것을 넘어, 이미 존재하는 실사 영상에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창조적 복원’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9일 유진주 프로듀서를 만나 ‘실사구AI’ 프로젝트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실사구AI’라는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실사구시(實事求是)’에서 ‘시’를 ‘AI’로 바꾼 표현입니다. 단순한 언어유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작업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촬영된 실사 영상이 있어도 소스가 부족하거나 배경이 단조로우면 완성도를 높이기 어렵습니다. AI를 활용하면 기존 영상을 버리지 않고도 배경을 확장하거나 장면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결국 AI가 잠들어 있던 실사 영상을 다시 살려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표 사례로 ‘The Song of Our Lives’가 꼽힙니다. 어떤 작업이었나요?
2023년에 발표된 곡으로, 박영미의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을 영국 밴드 The Escape Club이 영어 팝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당시 멤버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는데, 4분 분량을 구성하기에는 활용 가능한 소스가 부족했습니다. 음악적 의미는 분명했지만 영상 밀도를 충분히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완성 이후에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번 AI 작업에서는 무엇이 달라졌나요?
단순한 실내 촬영 장면에 곡의 정서와 어울리는 새로운 풍경을 입혔고, 보컬리스트의 모습을 스케치풍 일러스트로 변환해 실사와 교차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며 생길 수 있는 단조로움을 줄이고, 원곡의 아날로그 감성과 팝 리메이크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를 동시에 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작업 사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각각 어떤 방식으로 보완됐나요?
작업마다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가수 박대인의 ‘바라던 바다’는 태양 클로즈업 장면을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돌고래를 타고 하늘을 나는 동화적 시퀀스로 확장했습니다. 단순한 풍경이 음악적 판타지로 확장된 사례입니다.
작곡가 오화평의 연주곡 ‘가쓰오우동’은 단일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댄스 영상을 한강시민공원,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등 다양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듯한 시퀀스로 재구성했습니다.
두근두근!! 미소녀밴드 ♡의 ‘다이어리’는 흰색 스튜디오 공간을 식물이 가득한 온실처럼 확장해 곡의 싱그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강화했습니다. 정우진의 ‘아마 나는’은 실내 공간을 숲속 장면처럼 재해석해 감정선을 새롭게 풀어냈습니다.
공통적으로 인물과 음악의 본질은 유지하면서 공간과 시각적 서사를 확장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처음부터 AI로 제작하는 것과 기존 영상을 보완하는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처음부터 제작하는 경우는 콘셉트, 캐릭터, 배경을 모두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실사 보완 작업은 기존 영상의 분위기와 감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과하게 바꾸면 원본의 진정성이 사라지고, 너무 적게 바꾸면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실사의 장점은 살리고 부족한 부분만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균형이 핵심입니다.
사운드리퍼블리카가 AI 뮤직비디오에서 강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난 2년간 AI 영상 분야에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며 어떤 기술이 어떤 장면에 적합한지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왔습니다. 또한 2018년 설립 이후 1,000편 이상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제한된 예산 안에서도 완성도를 높이는 노하우를 쌓아왔습니다. 이 두 가지 경험이 결합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AI 영상의 핵심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기술보다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AI 기술은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특정 기술 자체보다, 그 시점에 가장 적합한 기술을 선택해 음악에 맞게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AI는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결과물을 결정합니다.
AI 영상 제작에 적극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과거 대규모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을 보며 이런 제작 방식은 자본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음악은 반드시 큰 자본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AI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자본의 제약 때문에 좋은 음악이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고 싶습니다.
1970~80년대 명곡에도 적용 가능할까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당시에는 영상 자료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지만, AI를 활용하면 기존 자료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복원을 넘어 음악의 감정을 현재의 시각 언어로 다시 전달할 수 있습니다.
AI 영상이 인위적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AI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화려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실사 영상에서는 원본의 감정과 질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I는 주인공이 아니라 보조 역할을 해야 하며, 음악과 아티스트의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면요?
과거 작업의 아쉬움을 다시 보완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다가왔습니다. 제작자로서 ‘그때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있다’는 경험이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프로젝트 계획도 있으신가요?
현재 AI 가수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AI 캐릭터가 음악 콘텐츠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실사구AI’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주신다면요?
과거의 영상에 현재의 기술을 더해 음악의 감정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AI를 단순한 영상 제작 도구가 아닌, 기존 음악 IP를 재해석하는 창작 파트너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촬영 환경이나 예산 제약으로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던 음악 영상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사운드리퍼블리카는 향후에도 AI 영상 제작을 ‘기술’이 아닌 ‘음악 콘텐츠 기획’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