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와 기술기업이 반도체와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접근성은 여전히 핵심 인프라가 아닌 부가 기능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노캡션(InnoCaption)과 메즈모 테크놀로지스(Mezmo Technologies)를 이끄는 폴 리(Paul Lee) 최고경영자(CEO)는 Korea IT Times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포용적 설계는 누가 AI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요소인 만큼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하는 단계부터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노캡션은 자막을 제공한 누적 통화 건수가 3,000만 건을 넘어섰으며, AI 기반 텍스트 음성 변환과 다국어 자막, 접근 가능한 영상 커뮤니케이션으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리 CEO는 자동 자막 시대에도 인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이유와 AI를 통한 개인 음성 복원 가능성,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이 접근성 기술의 글로벌 모델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폴 리 이노캡션 CEO와의 일문일답이다.
Q1. 이노캡션이 자막을 제공한 통화가 누적 3,000만 건을 넘어섰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볼 때, 기술이 단순히 소통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자립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의사소통에 대한 접근성과 자립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3,000만 건의 자막 통화라고 말하지만, 내가 실제로 보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난 3,000만 번의 순간이다. 병원에 전화하고, 자녀의 학교에 연락하고, 취업을 위한 1차 전화 면접을 치르는 순간들이다. 청력 손실이 있는 이용자들에게 이런 일상적인 순간은 과거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아예 전화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했다.
우리는 이노캡션을 처음 사용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이용 전후의 통화 경험을 조사한 백서를 발간했다. 그 결과, 이용자들은 평균적으로 듣기 노력은 약 50%, 듣기로 인한 피로는 55% 줄었다고 답했다. 전화 통화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좌절과 불안, 낙담에서 자신감과 행복감, 만족감으로 바뀌었다. 이 수치와 정서의 변화는 우리 서비스가 한 사람의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편의 기능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 도구다.
Q2.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음성 인식과 실시간 번역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그런데도 접근성은 여전히 필수 인프라보다 선택적 기능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접근성이 세계 디지털 인프라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접근성이 디지털 인프라에 포함돼야 하는 이유는 인프라란 결국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도로와 전력, 광대역 통신망을 인프라로 보는 것은 이것들과 단절되면 현대적인 삶에서도 배제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 접근성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시스템을 접근 가능하게 만들지 않으면 일부 인구는 그대로 배제된다. 미국에서는 접근성을 통신 산업의 핵심 요소로 본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 필수 인프라가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혜택을 제공하도록 자막과 텍스트 음성 변환 서비스의 제공을 규제하고 지원한다.
접근성을 고려해 구축한 인프라는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 도로와 인도가 만나는 지점의 턱을 낮춘 연석 경사로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유모차와 여행 가방,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도 곧 혜택을 보게 됐다. 자막도 같은 사례다.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한 세대 전체가 사용한다. 청력에 어려움이 있는 비율은 낮지만, 18~25세 성인의 약 80%가 자막을 켜고 TV를 시청한다. 접근성을 인프라로 구축하면 결국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Q3. AI 생성 자막이 보편화되면서 속도만큼 정확성과 신뢰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노캡션은 AI 자동화와 인간의 전문성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인간의 판단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은 어디라고 보는가.
우리는 대부분의 기업보다 오랫동안 이 균형을 고민해 왔다. 처음에는 훈련받은 법정 속기사인 실시간 인간 속기사가 모든 통화에 자막을 제공했다. 2019년에는 이용자 의견을 반영해 업계 최초로 완전 자동 자막을 선택지로 제공했다. 핵심은 ‘선택지’라는 점이다. 완전 자동화가 수익성에는 더 유리했겠지만 인간 자막을 없애고 AI로 대체하지 않았다. 두 방식은 각각 분명한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용자의 선택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설계했고, 통화 도중에도 AI와 실시간 속기사 방식을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배경 소음과 동시에 겹치는 말, 강한 억양, 불량한 음질처럼 처리하기 어려운 통화에서는 특히 인간의 판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AI는 음질이 너무 나빠 신뢰할 만한 전사가 불가능할 때도 항상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을 내놓는다. 반면 훈련받은 자막 전문가는 이용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관련성 높은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 또 AI가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다. 완전히 틀릴 수 있는 추측을 그대로 전달하는 대신 음질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상대방에게 더 크게 말해 달라고 요청하도록 돕는 것이다.
인간과 AI 자막의 장점을 모두 이용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서비스 수요도 계속 늘었다. 흥미롭게도 자동 자막이 크게 확산됐지만, 현재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인간 속기사 수는 자동 자막 도입 전보다 더 많다. AI를 사람을 대체하는 데 쓰지 않고 이용자에게 봉사하도록 배치하면 모두의 일은 더 많아지고, 이용자가 받는 서비스도 더 좋아진다.
Q4. 세계 각국 정부가 반도체와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AI 인프라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접근성 역시 단순한 사회정책이 아니라 핵심 AI 인프라로 봐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접근성이 통상 사회정책의 범주로 분류되는 이유는 이해하지만, 두 영역의 차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사회정책과 가장 좋은 인프라 투자는 많은 경우 결국 같은 것으로 귀결된다.
반도체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수십억 달러는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접근성은 그 역량이 실제 사람들에게 도달하도록 만드는 과정의 일부다.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이지만, 접근성을 인프라로 다루면 장애인과 빠르게 늘어나는 고령층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대규모 AI 투자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
그 성과는 분명하다. 앞서 설명했듯 의사소통 접근성은 자립으로 직결된다. 기술로 없앨 수 있는 장벽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대신 직장에 남아 경력을 이어갈 수 있게 한다. 여러 이노캡션 이용자는 자막 덕분에 청력 손실을 이유로 배제되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전화 면접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개인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경제가 잃을 수도 있었던 생산적인 인력을 지켜낸 이야기다. 접근성이 처음부터 반영되면 장애인과 고령층은 자신의 재능과 경험으로 계속 기여할 수 있다. 사회는 배제로 인한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그 생산성을 얻게 된다.
Q5. 이노캡션은 자막 전화에서 AI 기반 텍스트 음성 변환, 다국어 자막, 접근 가능한 영상 커뮤니케이션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 가운데 향후 5년간 가장 큰 장기적 영향을 미칠 혁신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 중요하지만, 향후 5년간 가장 깊은 영향을 미칠 기술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소리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돕는 AI 기반 텍스트 음성 변환이라고 본다. 후두 절제술을 받았거나 인후암을 앓은 사람, 루게릭병(ALS)이나 실어증이 있는 사람, 음성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농인처럼 대화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의존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기술이다. 이용자가 말하는 대신 문자를 입력하면 앱이 통화 중 그 내용을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전달하고, AI가 모든 단어를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실시간 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이 이 분야에서 시작한 첫 번째 혁신이며,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이 이어질 것이다.
현재 개발 중인 분야 중 하나는 맞춤형 음성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텍스트 음성 변환은 단조로운 로봇 목소리를 의미했다. 오늘날 AI 음성은 자연스럽고 인간답게 들리며, 다음 단계는 더욱 놀랍다.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되살려 전화나 화상회의에서 다시 자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언어장애가 대화 가능 여부를 더 이상 결정하지 않을 때까지 AI가 이들의 가능성을 계속 넓혀가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되찾아 주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기술은 찾기 어렵다.
Q6.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AI가 일상에 깊이 스며드는 가운데, AI 기반 접근성 기술은 농인과 난청인뿐 아니라 고령층과 사회 전체에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고령화는 접근성이 모두의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65~74세 인구 약 3명 중 1명, 75세 이상에서는 거의 절반이 청력 손실을 겪는다. 따라서 자막을 시작으로 우리가 수년간 농인과 난청인 공동체를 위해 개발해 온 기술은 고령층 전반에도 폭넓게 도움이 될 것이다. 노화에 따른 청력 손실은 사회적 고립 위험을 높이고,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고립은 인지기능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의사소통의 통로를 열어두는 일이 두 가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일상의 자립을 지키는 동시에,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적 관계와 인지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AI는 자막을 넘어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고령층을 도울 수 있다. 특히 기대하는 분야는 AI가 물리적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사회의 고령화 속도를 인간 돌봄 인력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40년까지 돌봄 인력이 1,300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개인용 AI와 로봇은 이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고령자를 대신해 기억하고 복약 시간을 관리하며, 자연스러운 대화로 인지 활동을 자극하고 고립을 줄여주는 동반자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집까지 옮기고, 휠체어에 타고 내리는 일을 돕거나, 저시력자가 낯선 길을 걸을 때 안내하는 로봇도 가능하다. 피지컬 AI가 개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접근성 지원의 수준은 생각만 해도 놀랍다.
Q7. 2030년을 내다볼 때, 접근성을 사후에 덧붙이는 대신 디지털 시스템의 설계 단계부터 반영하려는 기술기업과 정책입안자, AI 리더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기술기업과 AI 리더들에게는 제품 개발 초기부터 접근성 이용자의 여정을 반영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AI 덕분에 이는 어느 때보다 실현하기 쉬워졌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빨라지고 반복 개선 비용은 낮아졌으며, 과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방식으로 디지털 경험을 맞춤화할 수 있게 됐다. 우리도 몇 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기능을 출시하며 이를 직접 체감하고 있다.
사용자경험(UX)을 설계할 때는 핵심 이용자의 관점에서 제품을 사용하는 전 과정을 살핀다. 접근성이 필요한 이용자에게도 같은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청력 손실이나 언어장애, 시각 제한이 있는 사람을 구체적인 사용자 유형으로 만들고, 그 관점에서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해 보면서 어디에서 경험이 끊기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말처럼 항상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접근성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 역시 더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업계가 이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접근성 설계는 제품 개발의 정상적인 일부가 되고, 수많은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것이다.
정책입안자는 업계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장려하되 지나치게 세부적인 처방을 내리려는 유혹은 경계해야 한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경직된 규정은 작성되는 순간부터 시대에 뒤처질 수 있다. 기업이 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내재화하도록 지원하는 유연한 정책이 훨씬 오래 유효할 것이다. 개발자와 기업이 제 역할을 한다면 강압적인 규정의 필요성도 줄어든다.
Q8. 한국이 AI와 디지털 혁신 분야에서 역할을 강화하는 가운데, 포용적 AI와 접근 가능한 디지털 소통을 세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기회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은 이미 탄탄한 접근성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인도와 지하철역에 설치된 점자블록, 접근 가능한 엘리베이터를 갖춘 무장애 건물, 주요 정부 발표 때 의무적으로 제공되는 한국수어 통역을 확인한다. 많은 나라가 아직 이루지 못한 성과다.
내가 보는 기회는 이러한 의지를 자막 분야로 확장하는 데 있다. 수어는 중요한 공동체를 위한 언어이지만, 청력 손실이 있는 인구는 수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보다 훨씬 크며 대부분 음성 언어로 소통한다.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이 인구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 전화와 영상, 공공 발표, 나아가 일상의 모든 환경에서 제공되는 자막은 이 세대에 필요한 접근성 인프라다.
한국은 고령사회를 위한 접근 가능한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선도적 모델이 될 기술력과 인프라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인터뷰이 소개 | 폴 리 이노캡션 CEO
폴 리는 이노캡션과 메즈모 테크놀로지스의 최고경영자다. 메즈모 테크놀로지스는 이노캡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브리지 캡션(Bridge Caption)’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리 CEO는 메릴린치(Merrill Lynch), FFL, 온타리오 교직원연금(Ontario Teachers’ Pension Plan) 등에서 12년간 금융·투자 분야의 경력을 쌓았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홍콩, 런던에서 활동했으며, 이 기간 아버지가 설립한 이노캡션의 재무 자문도 맡았다.
2020년 이노캡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공식 합류한 뒤 2023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2025년 메즈모 테크놀로지스 설립과 함께 초대 CEO를 맡았으며, 현재 두 회사의 제품 개발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