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영국서 40기 규모 추진…EPC 역량 앞세워 유럽 원전시장 확대
삼성물산이 글로벌 원전 기업들과 손잡고 유럽 소형모듈원전(SMR) 시장 공략을 확대한다. 개별 원전 건설에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일한 SMR을 여러 지역에 반복적으로 건설하는 ‘플릿(Fleet)’ 방식의 사업모델 구축에 나선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아틀란틱카운슬 원자력 에너지 정책 서밋에서 GE 버노바, 히타치, 신토스그린에너지(SGE)와 BWRX-300 시장 개발 및 상업화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협약의 대상인 BWRX-300은 비등수형 원자로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300MW급 SMR이다. GE 버노바와 히타치의 합작법인인 GE 버노바 히타치 뉴클리어 에너지(GVH)가 설계와 원자로 기술을 공급한다.
SMR 한 기씩 짓는 대신 ‘플릿’으로
이번 협력에서 눈에 띄는 것은 플릿 방식이다.
플릿은 여러 기의 원전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개발·운영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설계의 SMR을 여러 지역에 반복적으로 적용해 설계와 건설 과정의 표준화를 높이고 사업 규모를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규모가 작고 모듈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 발전단가를 낮추려면 반복 건설을 통한 규모의 경제 확보가 중요하다. 이번 협력도 BWRX-300을 특정 국가의 단일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동부 유럽과 영국에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4개사의 역할도 나뉜다. GVH가 BWRX-300 설계와 기술을 공급하고 히타치는 원자력 분야의 기술·산업 역량을 제공한다.
삼성물산은 국내외 원전과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쌓은 설계·조달·시공(EPC) 역량을 맡는다. SGE는 유럽에서 BWRX-300 사업을 개발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사업개발을 주도한다.
폴란드 26기·영국 14기 사업 추진
BWRX-300의 유럽 사업도 구체화되고 있다.
SGE는 폴란드에서 BWRX-300 26기에 대한 원칙결정을 확보하고 현재 첫 14기를 수용할 수 있는 3개 부지를 중점 개발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3개 부지에 총 14기, 4.2GW 규모의 BWRX-300 플릿 구축을 추진 중이다. 영국 국영 원자력기관 GBE-N(Great British Energy–Nuclear)이 주관하는 예비 규제평가 심층검토 단계에도 들어갔다.
폴란드와 영국에서 현재 추진 중인 물량을 합하면 40기에 달한다. 4개사는 이들 사업을 기반으로 중동부 유럽과 영국에서 추가 사업기회도 발굴할 계획이다.
BWRX-300은 기존 상용 비등수형 원자로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를 단순화·표준화한 SMR이다. 현재 캐나다에서 최초 호기가 건설되고 있다.
삼성물산, 유럽 SMR에서 EPC 입지 확대
삼성물산은 최근 SMR을 해외 원전사업의 한 축으로 키우고 있다.
특히 GVH와 BWRX-300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스웨덴 스투드스빅(Studsvik)에서도 BWRX-300과 관련한 사업 성과를 확보하며 유럽 시장에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번 협약은 삼성물산이 원자로 자체 기술을 보유하기보다 글로벌 원전 기술기업과 현지 개발사를 연결하고, 대형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기반으로 EPC 영역을 맡는 구조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SMR 시장이 실제 대규모 상용화 단계로 넘어가려면 원자로 기술뿐 아니라 인허가와 공급망, 금융, 시공 능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 특히 동일 모델을 여러 국가에 반복 건설하는 플릿 방식에서는 공사 기간과 비용을 일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EPC 역량이 중요해진다.
김정욱 삼성물산 해외사업부장(부사장)은 “삼성물산은 GVH와 함께 BWRX-300 배치를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최근 스웨덴 스투드스빅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며 “GE 버노바, 히타치, SGE와 함께 유럽 SMR 사업의 새로운 장을 열게 돼 뜻깊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 감축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원전 활용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SMR은 아직 본격적인 상업화 초기 단계인 만큼 실제 사업 속도는 국가별 인허가와 사업비, 금융조달, 최초 프로젝트의 건설 성과 등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삼성물산으로서는 캐나다에서 건설 중인 첫 BWRX-300의 진행 상황과 폴란드·영국 프로젝트가 향후 유럽 SMR 사업 확대를 가늠할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