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글로벌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오랫동안 시장을 주도해온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면서 인공지능(AI)·자율주행 시대 핵심 반도체 공급자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1일 자동차 산업 분석업체 S&P 글로벌 모빌리티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차량용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40%로 집계됐다. 2024년 35%였던 점유율이 1년 만에 5%포인트 상승하며 처음으로 업계 1위에 올랐다.
반면 기존 선두였던 마이크론은 같은 기간 40%에서 36%로 점유율이 하락하며 2위로 밀려났다. 업계에서는 차량용 메모리 시장의 무게중심이 기존 북미 중심 구조에서 전기차와 스마트카 중심의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가 중국 시장 공략에 성공한 점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최근 자율주행과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경쟁이 격화되면서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대형 디스플레이와 AI 기반 주행 보조 기능, 고해상도 차량용 콘텐츠 서비스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차량 한 대에 탑재되는 메모리 용량도 과거 대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이 시장에서 저전력 D램(LPDDR)과 유니버설 플래시 스토리지(UFS) 등 첨단 메모리 제품을 앞세워 영향력을 확대했다. 전력 소모를 줄이면서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어 전기차와 자율주행 시스템에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자동차 전장 생태계 핵심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한 것도 점유율 확대 배경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퀄컴과 독일 보쉬, 일본 덴소, 미국 테슬라 등에 차량용 메모리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량용 메모리 시장은 한때 메모리 업계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분야로 분류됐다. 스마트폰이나 서버용 반도체처럼 빠른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고, 차량 특성상 안정성과 내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수적인 공급망 구조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실제 자동차용 반도체는 통상 7~8년 이상 장기간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신규 업체 진입이 쉽지 않았다. 차량 인증 절차도 까다롭고, 한번 공급망에 진입하면 장기 계약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그러나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차량 내부가 ‘움직이는 데이터센터’로 변하면서 고성능 메모리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이 변화를 겨냥했다. 2015년부터 LPDDR과 UFS 기반 차량용 솔루션 사업을 본격 확대하며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후 차량용 SSD와 그래픽 D램(GDDR) 공급을 늘리며 자율주행·고성능 인포테인먼트 분야를 집중 공략했다. 최근에는 AI 연산 기능이 강화된 차량 플랫폼 확대에 맞춰 고대역폭·고신뢰성 메모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에서는 차량용 메모리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새로운 성장축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PC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자동차 산업이 AI 기반 고성능 반도체 수요를 새롭게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과거 자동차 메모리는 범용 제품 위주였지만 이제는 AI와 자율주행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 됐다”며 “삼성전자가 기술력과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입증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채택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