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헌신한 ‘오성 장군’ 김홍일 장군의 제45주기 추모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사단법인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회장 김해석)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권오성 대한민국 육군협회장, 소형기 육군사관학교장, 권영우 육군 제1군단 부군단장 등 정부·군 관계자와 서울권 13개 대학 학군사관후보생(ROTC) 대표, 독립유관단체,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김홍일 장군(1898~1980)은 평안북도 용천 출신으로 정주 오산학교를 수석 졸업한 뒤 1918년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후 중국 국민혁명군에 입대해 북벌전쟁과 중일전쟁 등에 참전했으며, 1931년 상하이 병공창 병기창 주임으로 근무하면서 김구 주석을 도와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필요한 폭탄을 제공했다.
1945년에는 김구 주석의 권유로 한국광복군 사령부 참모장을 맡아 한미 연합 국내 상륙작전을 준비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해 창군 최초 장군으로 임관했으며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참모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6·25전쟁 당시에는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 한강방어선 전투를 지휘해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고 미군 참전까지 시간을 확보했다. 이후 육군 제1군단장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며 국군 반격작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등 대한민국 자유 수호에 공을 세웠다.
1951년 중장 예편 후에는 주중화민국 대사, 외무부장관, 재향군인회장, 국회의원, 광복회장 등을 지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해 1951년 태극무공훈장,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으며, 1998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2015년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군에서 2성 장군, 해방 후 한국군에서 3성 장군을 지낸 경력으로 ‘오성 장군’으로 불린다.
이번 추모식에서는 AI 기술로 구현한 김홍일 장군이 추모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김홍일 장군이 육군사관학교장으로 재직할 당시 생도 2기로 입학했던 장기호 육이오참전육사생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회고사를 맡아 의미를 더했다.
기념사업회가 출범하고 의미 있는 추모식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지원이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인 김호연 회장은 2023년 유족을 만나 김홍일 장군 서거 이후 40여년간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지 않아 장군의 업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접했다. 이후 사재를 출연해 기념사업회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했다.
또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와 이봉창·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의 참여와 지원을 이끌어내며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함께하는 기념사업회로 기반을 마련했다.
기념사업회는 2024년 2월 설립 이후 제44주기 추모식과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으며, 당시 김호연 회장의 초청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김홍일 장군 유족도 참석했다.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는 앞으로도 장군의 독립운동과 국군 창설, 6·25전쟁 당시의 공적을 널리 알리고 그의 구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