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 | 한국전쟁 이후의 입양
연재 2 | 한국전쟁 이후의 입양
  • Korea IT Times 편집국
  • 승인 2025.11.0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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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재물 ‘한국전쟁과 그 세계적 유산(The Korean War and Its Global Legacy)’의 두 번째 기사다. 본 시리즈는 동아시아의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 전 세계의 지정학적, 문화적, 사회적 지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탐구한다. 전쟁터에서 입양 항공편으로, 휴전선에서 DMZ로 이어지는 전후의 복합적 유산을 조명한다.

글의 순서

1. 한국전쟁과 그 글로벌 유산: 전장(戰場)에서 해외입양까지

2. 한국전쟁 이후의 입양

3. 한국 경제의 기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4. 한국전쟁이 촉발한 의학 혁신

5. 한국전쟁 기원에 대한 새로운 자료 분석

6. 한국전쟁이 냉전을 바꿨는가

7. 전쟁 이후 한반도 종교 지형 변화

8. 한국에서의 미군 개입

9. 한국과 프랑스 참전용사 이야기

10. 한국 사회에서의 반미주의


 

필진│리야드 무수디 (Riyad Moosoody)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어떻게 세계 최대의 ‘아이 수출국’이 되었을까? 1957년, 한국전쟁 고아들을 태운 첫 전세기가 미국으로 향했다. 이 비행은 대규모 해외 입양의 시작이었다. 1953년 전쟁이 끝났을 때, 고아들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미국인 부부 해리와 버사 홀트는 외국인 부모에게 한국 아동을 입양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은 1955년 한국전쟁 고아 여덟 명을 직접 입양했고, 이후 더 많은 아동을 돕기 위해 ‘홀트 국제아동복지회(Holt International Children’s Services)’를 설립했다. 이 미국 기반 인도주의 기관의 출범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혼혈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의 대규모 해외 입양으로 이어졌다.

1957년 10월 31일자 코리아 헤럴드, 당시 코리안 리퍼블릭은 홀트 부부가 그해 10월에만 400명 이상의 한국 아동을 데려갔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은 “한국에 주둔한 유엔군 병사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이후 여러 기관이 매개 역할을 하며 한국 아동의 해외 이송은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정신의학 교수 앨버트 G. 가우(Albert C. Gaw)의 저서 『Culture, Ethnicity & Mental Illness』에 따르면, 1955년부터 1966년까지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아동은 6,293명에 달했다. 이 중 46%가 백인과의 혼혈, 41%가 순수 한국인, 나머지는 흑인 또는 흑인 혼혈이었다고 한다.


이념전의 무기로 쓰인 입양

미국 입장에서 이른바 ‘GI 베이비(GI babies)’ 혹은 ‘UN 베이비(UN babies)’는 북한이 미국을 비난하는 이념전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 약점이었다. 한국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시작한 복음주의 단체 ‘월드비전 인터내셔널(World Vision International)’의 설립자 밥 피어스(Bob Pierce)는 혼혈 아동 입양을 반공 기독교 선전 프로그램의 일부로 이용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해외 입양 정책은 북한이 남한을 “아이를 미국 노예상에게 파는 배신자”라 비난하는 근거로 삼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미국 언론에서 인도주의적 연민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이들의 복지는 공산주의를 봉쇄하려는 미국의 전후 정책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인도적 지원은 한국민의 ‘호의’를 얻는 수단이었다.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수천 명의 혼혈아들은 새로 수립된 이승만 정부와 미국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자 정치적 과제로 떠올랐다.

당시 미국의 많은 부부들은 불임, 연령, 재정 문제 등으로 자녀를 더 낳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쟁 고아의 사진을 ‘하늘의 선물’로 보았다. 1953년 말, 미국 각지에서 영사관으로 보내진 편지들에는 “세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한국전쟁 고아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사연이 담겨 있었다. “6~7세 여아를 입양하고 싶다”, “딸아이에게 남동생을 만들어주고 싶다” 같은 구체적 요청도 있었다.


대규모 아동 수출

왜 한국 정부는 전쟁 후 아동의 해외 입양을 장려했을까?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새 가정을 찾을 기회를 주는 것”으로 여겨 큰 문제로 보지 않았다. 국내 입양은 드물었고, 기관에 수익도 되지 않았다.

입양 문화는 미국의 ‘핵가족’ 이상에 따른 정책 합리화와, 복지 문제를 ‘국외 입양’으로 해결하려는 한국 정부의 시도에 의해 형성되었다. 엘레아나 김(Eleana Kim)은 “해외 입양은 정부가 아이들을 돌보는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이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네 곳의 입양기관에 모든 절차를 위임했으며, 입양 부모는 항공 운송비, 의료비, 위탁가정 보상금, 행정 수수료 등 약 4천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미국 잡지 《더 프로그레시브(The Progressive)》는 “한국 정부가 이 특이한 사업으로 연간 1,500만~2,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보도했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은 “가능한 많은 고아를 미국으로 보내고 싶다. 특히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 이런 아이들은 한국인보다 오히려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썼다. 그는 해외 입양을 국가적 과제로 삼았고, 청와대는 미국 부부들의 구체적 요청에 맞는 아이들을 직접 찾아내는 데 관여했다.

정부는 혼혈아의 실태와 미군과 관계한 여성들의 존재를 조사하며, 입양을 통해 인구의 ‘정화’를 추진했다. 사회복지사들은 가족계획의 현장 집행자로서 혼혈아를 ‘정리’하고 어머니들을 설득했다. 홍옥순 등 젊은 사회복지사들은 DMZ 지역까지 찾아가 “아이를 미국에 보내는 것이 모두에게 낫다”고 설득했다.

미국 인류학자 리사 말키(Lisa Malki)는 “아동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맥락을 탈정치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인도주의 개입에서 ‘아이’는 국경과 정체성을 초월한 감정적 상징이었다. 미군들은 전쟁의 잔혹함 속에서 아이들을 도우며 ‘인류애’를 되찾고자 했다. 한국 언론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은 미군을 인도적 구세주로 묘사했다.

결국 미군은 한국 고아원과 입양 과정에서 ‘후견자’이자 ‘부모상’으로 등장했지만, 동시에 친부로서의 책임은 회피했다. 혼혈과 사생아라는 이중 낙인은 국제입양의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되었다. 1980년대, 뉴욕타임스는 “한국이 여전히 경제대국이 된 지금까지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고 있다”며 “입양 산업의 지속은 질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입양인들의 질문

홀트 부부는 국제입양의 선구자였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유산은 재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일부 성인 입양인들은 자신들의 입양 과정이 조작과 오류로 가득했다고 주장하며 정부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2021년, 한국 입양인 단체는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양기관들이 친부모가 살아 있음에도 고아로 위조한 서류로 입양을 진행했다”고 공식 진정을 제기했다. 또한 “비영리기관을 표방했지만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수령했다”며 회계 조사를 요청했다.

입양인 출신 예술가 진 마이어슨(Jin Meyerson)은 “한국은 일본의 전시 성노예 문제처럼 과거사 정리에 집착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아픈 입양 역사는 외면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우리 집 안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일본에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저자 소개

리야드 무수디(Riyad Moosoody)는 아시아 연구소(Asia Institute)의 글로벌 안보 연구원이다. 그의 연구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 한국 전쟁의 역사 서술, 그리고 이 분쟁이 지속해서 미치는 지정학적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리셔스 출생으로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학을, 보르도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 캠퍼스에서 미국사를 전공했다. 박사 연구를 위해 미국 연구소와 프랑스 국방부로부터 펠로우십을 수여받았으며,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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