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공동 취재팀
COMPUTEX 2026은 단순한 IT 전시회가 아니었다. 올해 행사장을 관통한 메시지는 AI 산업의 무게 중심이 클라우드와 생성형 AI에서 실제 물리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6월 2일부터 5일까지 타이베이에서 열린 COMPUTEX 2026은 ‘AI Together’를 공식 주제로 내걸었다. 33개국, 1,500여 개 기업, 6,000개 부스 규모로 열린 이번 행사는 AI와 로보틱스, 반도체, 스마트 제조가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융합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아시아 최대 AI 플랫폼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전시장 곳곳에서 확인된 공통된 흐름은 AI가 더 이상 화면 속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제 AI는 공장을 움직이고, 로봇을 제어하며, 산업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었다.
NVIDIA가 제시한 Physical AI의 청사진
올해 COMPUTEX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 기업은 단연 NVIDIA였다.
젠슨 황 CEO의 기조연설과 GTC Taipei 세션은 피지컬 AI 시대를 향한 NVIDIA의 산업 전략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NVIDIA는 GR00T N1.7 휴머노이드 파운데이션 모델, Blackwell 기반 Jetson Thor 에지 AI 플랫폼, 그리고 Isaac GR00T Reference Humanoid Robot을 공개하며 로봇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Unitree H2 Plus 섀시에 Sharpa 촉각 기반 5지 핸드, Jetson Thor, GR00T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레퍼런스 디자인은 연구용 프로토타입과 상용 제품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로 평가됐다.
현장에서 만난 로보틱스 업계 관계자들은 "이제 로봇 기업들은 자체 AI를 처음부터 개발하기보다 NVIDIA 생태계 위에서 어떤 기능을 차별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Agility Robotics, Figure, 1X, AGIBOT, NEURA Robotics 등 주요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이미 GR00T 기반 기술을 채택하거나 테스트하고 있다는 점은 NVIDIA가 로보틱스 산업의 사실상 플랫폼 사업자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장으로 내려온 AI, 현실이 된 Edge AI
Hall 1의 AI Computing & Tech Zone과 Hall 2의 Industrial IoT & Embedded Systems Zone을 둘러보며 확인한 또 하나의 변화는 AI의 산업 현장 진입이었다.
Aetina의 피지컬 AI·Agentic AI 시연, AAEON의 DEEPX NPU 기반 Edge AI 플랫폼, ADLINK와 ARBOR의 산업용 비전·제어 솔루션은 더 이상 연구실 기술이 아니었다. 대부분 실제 제조 공정과 물류, 스마트팩토리 현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AI 산업의 관심이 거대 언어 모델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실제 산업 생산성과 연결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특히 대만 기업들은 제조 공급망과 AI를 결합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이는 COMPUTEX 전반에서 나타난 피지컬 AI 흐름과도 맞물린다. AI를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닌 제조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접근하는 대만식 전략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었다.
스타트업 생태계, 상용화 경쟁에 들어서다
InnoVEX 역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약 500개 스타트업이 참가한 InnoVEX는 투자자와 기업, 플랫폼 기업이 연결되는 상용화 허브 공간이었다. Top 15 Pitch Contest, 글로벌 투자자 미팅, 일본 규슈 혁신 피치 프로그램 등은 스타트업들이 실제 고객과 투자자를 만나는 구조로 운영됐다.
RLWRLD, DIDEN ROBOTICS, Avalanche Computing 등 주목받은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NVIDIA Inception이나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있었다. 기술 자체보다도 생태계 연결성이 경쟁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부 지원 경쟁도 본격화
올해 COMPUTEX에서는 국가 간 스타트업 지원 경쟁도 눈에 띄었다. 한국, 캐나다, 프랑스, 이스라엘, 일본 등 9개국이 InnoVEX에서 국가 파빌리온을 운영하며 자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했다.
특히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소수 정예 집중 지원 모델은 많은 참가 기업들의 관심을 끌었다. 단순히 공동관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시장 브리핑, 수출 상담, 비즈니스 매칭까지 연계하는 방식은 전시 참가의 실질적 성과를 높이는 사례로 평가됐다.
한국 역시 대규모 공동관 운영 경험과 높은 참여 규모를 강점으로 보여줬지만, 향후에는 보다 집중적이고 전략적인 지원 모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은 과제와 현실적 한계
그러나 풀어야 할 과제도 확인됐다. Jetson Thor 개발자 키트와 생산 모듈은 이미 시장 공급 단계에 진입했지만, 일부 채널에서는 수요 증가에 따른 공급 불안정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GR00T 레퍼런스 디자인 발표 이후 관련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망 관리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행사 기간 동안 수많은 포럼과 세션이 열렸지만, 일부 프로그램은 최신 기술 소개에 머물렀다는 평가도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사업화 전략과 운영 경험 공유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한국 기업들의 포지셔닝 역시 숙제로 남았다. 참가 기업 수는 많았지만 여전히 부품, 임베디드 시스템, 하드웨어 중심 비중이 높았고, GR00T나 파운데이션 모델과 같은 상위 AI 레이어를 직접 다루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COMPUTEX 2026은 한국에 기회와 과제를 동시에 던졌다. NVIDIA가 GR00T 모델을 공개하고 Hugging Face, LeRobot 등 오픈 생태계와 연계하면서 한국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은 과거보다 낮아졌다. DIDEN ROBOTICS와 같은 기업이 글로벌 플랫폼과 연결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모델이 보여주듯 단순한 전시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타겟 기업 선정, 집중 지원, 사후 매칭,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동시에 한국 제조·서비스 환경에 최적화된 데이터셋과 로컬 AI 모델 개발도 병행돼야 한다.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하되 한국만의 강점을 구축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결론, Physical AI 시대의 출발점
COMPUTEX 2026은 AI가 화려한 데모를 넘어 실제 산업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첫 대규모 무대였다. NVIDIA가 제시한 풀스택 전략과 글로벌 기업들의 빠른 대응은 2026~2027년이 휴머노이드와 Physical AI 상용화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국 역시 선택의 시점에 서 있다. 글로벌 생태계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한국 산업 환경에 최적화된 차별화 전략을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플랫폼 경쟁의 후발주자로 남을 것인가. 이번 COMPUTEX는 그 질문에 대한 방향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AI Together’는 결국 ‘Physical AI Together’로 이어지고 있다. COMPUTEX 2026은 막을 내렸지만, Physical AI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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