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발밑’으로 변신한다. 매년 1,000만톤 이상 발생하는 제강슬래그를 도로포장용 골재로 활용하는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철강산업의 부산물 처리와 도로용 천연골재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11일 한국철강협회,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와 제강슬래그 아스콘의 도입과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그동안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 취급되던 제강슬래그를 고속도로 포장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세 기관은 앞으로 실제 도로 현장 적용을 늘리는 동시에 품질관리와 인증체계를 마련하고 제강슬래그 아스콘의 생산·시공 관리 기준을 구축하기로 했다.
도로공사가 이 사업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천연골재 수급 문제가 있다.
현재 고속도로 아스콘 포장에는 매년 약 59만톤의 천연골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골재를 확보하기 위해 산림을 훼손하거나 석산을 개발해야 하는 데다 개발 가능한 지역도 제한돼 안정적인 공급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반대로 철강산업에서는 제강 과정에서 연평균 약 1,025만톤의 제강슬래그가 발생한다. 이 가운데 94%가 성토용 골재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매년 약 66만톤은 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다.
도로공사는 이처럼 남아도는 제강슬래그를 도로포장에 활용하면 자원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천연골재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천연골재 채취와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을 줄여 연간 약 460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부분은 실제 도로에서 성능 검증을 마쳤다는 점이다.
도로공사는 지난해 9월 평택제천고속도로 제천 방향 510m 구간에 제강슬래그 아스콘을 시험 시공했다. 시험 결과 천연골재를 사용한 기존 포장과 비교해 성능상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본격적인 확대 적용에 나서게 됐다.
오는 10월부터는 서해안고속도로 등을 포함한 총 10.8km 구간에 제강슬래그 아스콘을 적용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제강슬래그를 활용한 도로포장이 단순한 폐기물 재활용을 넘어 도로 인프라의 자원순환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는 제강슬래그의 높은 맞물림 효과와 박리저항성을 활용해 일반 아스콘보다 포트홀 발생을 줄이고 내구성을 높이는 기술들이 개발·상용화되고 있다. 일부 관련 기업은 실제 도로 적용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도로 유지관리 비용을 낮추면서 친환경성을 확보하려는 요구가 동시에 커지고 있어 재활용 골재를 활용한 도로포장 기술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로공사 입장에서도 이번 사업은 새로운 골재 공급원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 천연자원 채취에 대한 환경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철강산업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의 활용처를 확대할 수 있어 철강업계와 도로 인프라 업계가 함께 순환경제를 구축하는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강슬래그를 도로에 대규모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품질 검증과 일관된 관리 기준이 필수적이다. 제강슬래그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생산부터 시공까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향후 사업 확대의 관건으로 꼽힌다.
이번 협약에서 품질관리 및 인증제 도입이 주요 과제로 포함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도로공사는 향후 제강슬래그 아스콘의 적용 구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면서 품질과 성능을 지속적으로 검증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