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3부 |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
4부 | 회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람
5부 | 폭행을 당했을 경우 유의할 점
6부 | 형사합의금, 얼마가 적당한가
7부 | 술자리 이후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준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8부 | 프리랜서와 퇴직금
9부 | 사업상 자금 융통으로 채권을 양도하는 경우 주의할 점
10부 | 외국인 배우자가 도망갔을 때, 이혼할 수 있을까?
11부 | 집주인이 수리를 미룬다면…임대차 계약 해지 가능할까?
12부 | 원사업자가 잠적한 경우, 수급사업자는 대금을 받을 수 있을까?
13부 | 경찰 조사 처음 받는다면 알아야 할 것들
14부 | 토지거래허가구역 계약, 허가 전에도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15부 | 범죄 목적을 숨기고 들어간 타인의 주거, 주거침입인가?
글 | 홍승권 변호사, 법무법인 판 (skh@law-pan.com)
택배를 배달하기 위한 택배기사인 척 타인의 주거에 허락을 받고 들어간 사람이 실제로는 그 집의 물건을 훔칠 목적을 가진 도둑이었다면, 절도죄 외에 주거침입죄도 성립할까? 주거에 거주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택배기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강제로 주거에 침입한 경우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아래에서는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고, 그에 따른 필자의 견해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주거침입죄가 보호하는 법익은 주거의 사실상 평온이다. 일반적으로 침입이란 주거자 또는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주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주거자 또는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주거 안으로 들어가면 주거의 사실상 평온이 침해되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
과거 대법원은 주거자 또는 관리자가 진의를 알았다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적 의사'를 기준으로 주거의 사실상 평온이 침해되었는지를 판단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몇 가지 주거침입 사건에서 주거권자의 반의사성보다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 태양에 비추어 사실상 평온 상태를 해치는 방법인지에 따라 주거침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동거주자(부부 중 어느 한쪽) 일방의 동의만 받은 경우나 음식점 또는 시청 로비에 범죄 목적으로 들어간 경우에도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 태양이 사실상 평온 상태를 해치는 방법이 아니라면 주거침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행위자의 숨은 목적이나 주거권자의 내심의 의사보다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출입했는지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종전보다 처벌 범위를 좁혀 형법의 보충성 원칙에 더욱 부합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법원의 견해 변경이 주거침입죄 전체에서 말하는 침입의 개념에서 주거권자의 반의사성을 고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뀐 것인지가 문제 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를 두고 대법원이 주거침입죄 전체에서 주거권자의 반의사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성급하다. 실제로 대법원이 판단한 사례들을 보면 공동거주권자 한쪽의 승낙을 받고 주거에 들어간 경우이거나, 일반적으로 다수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 등 일종의 공공장소에 출입한 경우들이다.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 아닌 공동거주자가 존재하는 주거나 다수의 출입이 허용된 장소에서는 주거권자의 의사를 고려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동거주자가 있는 주거에서 일방의 동의를 받은 경우라면 당연히 누구의 동의도 받지 않은 경우와는 다르다. 또한 다수의 출입이 허용된 장소라면 주거권자의 의사는 개인의 사적 공간보다 타인의 출입을 더 폭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침입'이라는 개념 자체에 이미 거주자가 허락하지 않은 출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주거권자의 의사를 완전히 배제한 채 오로지 외형적 요소만으로 사실상 평온의 침해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다소 부자연스럽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대법원이 주거권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견해를 변경했다고 보기보다는, 다양한 주거침입 유형을 고려해 주거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식을 달리 제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적 공간에서의 주거의 평온은 결국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의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범죄 목적을 숨기고 주거권자를 기망해 그곳에 출입한 경우라면, 주거권자의 의사는 여전히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필자 소개
홍승권 변호사는 법무법인 판 소속 변호사로 민·형사 소송을 비롯해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제기되는 다양한 법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술 혁신과 재산권 질서, 규제 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