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길을 따라 걷는 세계유산 기행
사림정신의 뿌리, 김굉필과 도학의 길
『소학』 한 권으로 조선을 바꾸려 했던 선비
연재 순서
이 연재는 아홉 개의 서원을 소개하는 문화유산 기행을 넘어, 한국 정신문화 700년의 흐름을 따라가는 인문학 여정이다.
제3편 |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 — 공부는 어떻게 사람을 만드는가
제4편 | 류성룡과 병산서원 — 국가를 지킨 선비의 리더십
제5편 | 회재 이언적과 옥산서원 — 자연에서 완성한 철학
제6편 | 김굉필(金宏弼)과 도동서원 — 도학의 뿌리
제7편 | 정여창과 남계서원 — 지방에서 꽃핀 선비정신
제8편 | 김인후와 필암서원 — 청렴한 지성의 힘
제9편 | 최치원과 무성서원 — 통합의 사상
제10편 | 김장생과 돈암서원 — 예학이 만든 공동체
제11편 | 서원은 과거의 유산인가, 미래의 학교인가
글 | 정연태 건설산업정보원 원장
제6편 | 도동서원(道東書院)
낙동강은 조용히 흐른다. 강은 수백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나왔지만, 그 물결 위로는 수많은 왕조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비슬산 자락으로 들어가면 그 낙동강을 바라보며 고요히 자리한 한 서원을 만나게 된다. 도동서원이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다. 높은 누각도 없고, 웅장한 궁궐도 아니다. 그러나 이곳은 조선의 정신을 바꾸었던 사람들이 공부하던 자리다. 조선을 움직였던 사림파, 그 사림의 뿌리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그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다. 한훤당 김굉필이다. 그는 칼을 잡은 장군도 아니었고, 나라를 이끈 재상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길이라고 믿었던 교육자였다.
도동(道東)이라는 이름
도동서원이라는 이름은 매우 상징적이다. 도(道)는 인간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며 우주의 바른 이치다. 동(東)은 동쪽을 뜻한다. 따라서 도동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동방에서 도가 이어지는 곳”이라는 깊은 뜻을 품고 있다. 조선 선비들은 공자의 학문이 중국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도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 정신을 상징하는 이름이 바로 도동이다. 서원의 이름 하나에도 학문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이 담겨 있었다.
한훤당 김굉필은 누구인가
김굉필(1454~1504)은 조선 초기 성리학자이며, 사림파의 실질적인 뿌리로 평가받는다. 그는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였고, 다시 조광조의 스승이 되었다. 한 사람의 학문이 제자에게 이어지고, 그 제자가 다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조선의 사림은 이렇게 계승되었다.
김굉필은 벼슬보다 공부를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늘 말했다. “사람을 바꾸지 못하는 학문은 참된 학문이 아니다.” 그가 평생 가장 가까이 두었던 책은 『소학(小學)』이었다.
왜 『소학』이었을까
오늘날 『소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린아이들이 배우는 기초 교재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선 선비들에게 『소학』은 인생의 교과서였다. 부모를 공경하는 법, 스승을 섬기는 법, 친구를 사귀는 법, 자신을 다스리는 법,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두 『소학』 안에 담겨 있었다.
김굉필은 경전을 읽기 전에 먼저 『소학』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다. 많이 아는 사람보다 바르게 사는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에게 공부란 머리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일이었다.
사림의 탄생
조선 초기 정치는 훈구 대신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라를 세운 공신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김굉필과 젊은 선비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권력보다 도덕, 재산보다 의리, 출세보다 원칙을 앞세웠다. 그들이 추구한 것이 바로 도학이었다. 이 작은 흐름이 훗날 사림이라는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한다. 도동서원은 바로 그 정신의 출발점이다.
무오사화와 피의 역사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연산군 시대, 훈구세력은 김종직의 글을 문제 삼아 사림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김굉필도 유배되었다. 다시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그는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권력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믿었던 도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사림정신의 스승이라 부른다.
도동서원이 세워진 이유
김굉필이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잊지 않았다. 1607년 도동서원이 세워졌다. 1609년 광해군은 ‘도동’이라는 이름을 내리며 사액서원으로 인정하였다. 그 순간 도동서원은 단순한 지방 서원이 아니라 조선 도학의 중심이 되었다.
건물이 아니라 교육철학
도동서원을 걸어보면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강학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사당이 모두 질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공부를 위한 공간일 뿐이다. 진짜 서원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었다.
학생들은 먼저 『소학』을 배우고, 몸가짐과 예를 익히고, 스승을 공경하며,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오늘날 말로 하면 인성교육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예절교육이 아니었다. 인간을 완성하는 교육이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이유
2019년 유네스코는 한국의 아홉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도동서원은 그 가운데에서도 사림정신과 도학 교육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평가된다. 이곳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었다.
사람을 길러내고 공직자와 지도자를 만드는 학교였다. 학문과 인격을 하나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다. 세계는 바로 그 교육철학을 인정했다.
흥선대원군도 남겨 둔 서원
19세기 흥선대원군은 전국 대부분의 서원을 철폐했다. 수백 개의 서원이 사라졌지만 도동서원은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도동서원은 지방의 사설 교육기관이 아니라 조선 정신문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학문적 권위, 교육적 가치, 역사적 의미 등 모든 면에서 보존할 가치가 충분했다.
AI 시대에 다시 읽는 김굉필
우리는 AI가 모든 지식을 설명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으면 몇 초 만에 답이 나온다. 그러나 김굉필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물음을 남긴다. “그 답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
AI는 『소학』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는 삶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AI는 윤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양심은 인간만이 실천할 수 있다. AI는 정보를 주지만 인격은 인간이 스스로 길러야 한다.
그래서 김굉필의 교육은 오늘날 더욱 중요하다. 지식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도동서원을 떠나며
도동서원을 걸으면 화려한 감동보다 조용한 울림이 오래 남는다. 큰 건물을 본 기억보다 한 권의 『소학』을 붙들고 평생을 살았던 한 선비의 모습이 마음속에 남는다.
김굉필은 거대한 이론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먼저 자신을 바로 세우려 했고, 한 사람을 바꾸려 했다. 그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바꾸었다. 그렇게 사림이 탄생했고, 조선의 정신문화는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도동서원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공부란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낙동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른다. 그러나 그 강가의 오래된 서원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학문은 세상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이기는 데서 시작된다.”
다음 편 예고
제7편 | 남계서원(灆溪書院)
지리산이 품은 선비, 일두 정여창
도동서원이 사림정신의 씨앗을 심은 곳이라면, 남계서원은 그 씨앗이 지리산 자락에서 곧은 절개와 청렴으로 자라난 곳이다. 다음 여정에서는 함양 남계서원을 찾아, 일두 정여창이 남긴 삶과 학문, 그리고 선비의 올곧은 품격을 만나본다.
필자 소개
정연태(필명: 만리풍취)는 문화사상가이자 정책전략가다. 역사와 철학, 과학기술을 연결하는 융합적 관점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현대 문명과 AI 시대의 미래 가치로 재해석하는 연구와 집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