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국내 인공지능(AI)과 정보보호 업계를 한데 묶어 국산 AI의 사이버보안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실제 보안 현장에서 쌓이는 방대한 데이터를 AI 모델 학습에 활용하고 대학의 독립적인 검증까지 거쳐 산업 현장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SK텔레콤은 업스테이지와 국내 주요 정보보호 기업, 대학들이 참여하는 ‘독자 AI 사이버보안 협의체’를 출범하고 AI 기반 정보보호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협력에는 SK텔레콤과 업스테이지를 비롯해 SK쉴더스, 시큐아이, 안랩, 라온시큐어, 지니언스, 파이오링크 등 정보보호 기업 6곳과 고려대학교, 숭실대학교, 부산대학교 등 3개 대학이 참여한다. 모두 11개 기관이 국산 AI의 보안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힘을 모으는 셈이다.
이번 협의체의 핵심은 AI 모델에 실제 보안 현장의 경험을 주입하는 것이다. SK텔레콤의 A.X K 시리즈와 업스테이지의 솔라(Solar)에 악성코드 분석, 취약점 탐지, 보안관제 등 현장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학습시켜 AI가 단순히 보안 관련 정보를 아는 수준을 넘어 실제 위협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계획이다.
양사는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 3단계에 진출한 자체 AI 모델을 사이버보안 분야로 확장한다. AI 모델 자체의 성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보안기업들이 보유한 전문 데이터와 기술을 결합해 특정 산업에 특화된 AI 역량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모델 학습은 사전학습과 사후학습으로 나눠 진행된다. 사전학습에서는 보안 분야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AI가 사이버보안과 관련한 기본 지식과 패턴을 폭넓게 습득하도록 한다. SK텔레콤은 차기 A.X K3 모델에 보안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향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두의 AI’ 서비스의 안전한 운영을 뒷받침할 데이터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업스테이지는 차세대 솔라 모델의 코드 및 로그 분석 능력 강화에 집중한다. 대규모 코드를 분석하고 장기간 축적된 로그를 살펴볼 수 있도록 취약점 탐지와 분석에 필요한 보안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학습시킬 예정이다.
사후학습에서는 실제 보안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높인다.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찾아내고 필요한 패치를 분석하는 작업부터 보안관제센터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응하는 과정, 보안 도구를 안전하게 활용하는 방법까지 현업에서 필요한 작업을 AI가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여기에 국내 보안업계가 가진 대규모 데이터와 실전 경험이 결합된다. SK쉴더스는 통합 보안관제 플랫폼을 통해 하루 약 170억건에 달하는 위협 이벤트를 분석하고 있다. 안랩 역시 2.5PB가 넘는 보안 데이터를 기반으로 악성코드와 엔드포인트 위협을 탐지하는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시큐아이는 고성능 방화벽 기술을, 라온시큐어는 분야별 보안 데이터와 자율 모의침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니언스는 보안 솔루션 운영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비롯해 사후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셋을 제공한다. 파이오링크는 자율 공격 검증과 탐지 룰 생성 기술을 바탕으로 협의체에 참여한다.
특히 이번 협력은 과거에 발생했던 보안 위협만 AI에게 학습시키는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관제 현장에서 새롭게 포착되는 최신 위협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모델 학습에 반영해 AI가 변화하는 공격 방식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완성된 AI 모델은 다시 실제 보안 제품과 서비스에 투입된다. 참여 기업들은 아직 보안 패치가 공개되지 않은 제로데이 취약점 분석부터 실시간 보안관제 등 실제 서비스에 A.X K와 솔라를 적용해 성능을 검증할 예정이다. 실증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와 대응 경험은 다시 AI 모델 학습에 활용된다.
데이터를 확보하고 AI를 학습한 뒤 실제 현장에서 성능을 검증하고, 검증 결과를 다시 학습에 반영하는 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이번 협의체의 핵심이다.
AI 자체의 보안성도 별도로 검증한다. 두 AI 모델이 서로를 공격하는 ‘상호 레드티밍’을 통해 취약점을 찾아내고 방어 능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SK텔레콤은 앞서 A.X K2 개발 과정에서 자체 레드티밍 자동화 체계인 SERT를 구축해 약 1만5000건의 공격 대응 데이터를 생성하고 이를 모델 학습에 활용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는 해당 체계를 두 AI 모델 간 상호 검증 과정으로 확대한다.
업스테이지 역시 고난도 안전성 데이터 21만건과 AI가 위험한 요청에 응하지 않도록 하는 정렬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이를 보안 역량 강화에 적용한다.
대학들은 기업과 일정 거리를 둔 독립적인 검증 역할을 맡는다. 고려대학교는 AI의 실행 파일 분석 능력과 공격 방어 역량을 평가하고, 숭실대학교는 AI 보안 성능을 평가할 기준과 안전장치 우회 공격에 대한 대응력을 검증한다. 부산대학교는 차세대 모델과 경량 모델의 성능 및 안전성을 살펴본다.
기업들이 AI를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대학은 제3자의 관점에서 모델의 성능과 안전성을 점검하는 구조다.
SK텔레콤은 이번 협의체를 단순한 공동 연구 조직에 그치지 않고 국내 AI와 정보보호 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참여 기관들은 정기적인 기술 교류를 통해 공동 연구과제를 발굴하고 AI와 정보보호 관련 사업에도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향후 정보보호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AI 기업 등의 추가 참여도 가능하도록 협의체를 개방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이 기대하는 효과는 국내 기술과 데이터로 AI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다시 국내 보안산업에 적용하는 선순환이다. 해외 AI 모델에 의존하기보다 국내 보안 환경에 특화된 데이터를 활용해 독자 AI의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국내 기업의 보안 솔루션에 접목함으로써 이른바 ‘AI 사이버보안 주권’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AI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사이버보안 역시 AI를 활용한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고도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직접 확보한 보안 데이터와 국산 AI 모델을 결합하는 이번 협력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