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호남권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을 본격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성전자의 신규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지역 경제계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일 산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 주요 기업들과 비수도권 투자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는 호남권 반도체 산업 기반 구축과 삼성전자 신규 투자 유치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국내 반도체 생산 거점은 경기 평택·화성, 용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메모리 생산라인과 첨단 파운드리 공장, 연구개발(R&D) 인프라 대부분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지역 간 산업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와 여권은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구미를 소재·부품 산업 거점으로, 부산을 전력반도체 중심지로, 광주를 첨단 패키징 허브로 육성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신규 생산시설이 들어설 경우 광주와 전남 장성 일대가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광주 군공항 이전 예정 부지와 첨단산업단지 개발 지역이 후보군으로 언급된다.
만약 대규모 반도체 시설이 들어설 경우 생산공장뿐 아니라 협력업체, 연구기관, 물류시설 등이 함께 조성되면서 수조 원 규모의 투자와 대규모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지방 경제 활성화는 물론 청년 인재 유출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반도체 산업 유치를 핵심 성장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근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반도체 공장 유치 공약이 잇따라 제시됐다. 지역 산업 구조를 제조업 중심으로 고도화하고 AI와 미래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첨단 패키징 분야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호남 투자론에 힘을 싣고 있다. 첨단 패키징은 여러 개의 반도체를 하나로 결합해 성능을 극대화하는 기술로, AI 반도체 경쟁력 확보의 핵심 분야로 평가받는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실적인 난관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공장 한 곳을 건설한다고 경쟁력이 확보되는 산업이 아니다. 설계 기업(팹리스), 생산공장(파운드리), 소재·부품·장비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생태계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과 협력업체 대부분이 수도권과 충청권에 집중돼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위치한 경기·충북 지역조차 전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첨단 공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엔지니어와 협력업체 네트워크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공장만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생태계가 동시에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국들이 산업 집적화 전략을 강화하는 점도 변수다. 미국은 애리조나, 대만은 신주과학단지, 중국은 장강삼각주 등 특정 지역에 반도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는 오히려 클러스터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협력업체들의 부담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수백 개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수도권 인프라를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물류비 증가와 인력 확보 문제, 추가 투자 부담 등이 걸림돌로 꼽힌다.
무엇보다 현재까지 삼성전자는 관련 논의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 제기되는 호남 공장 신설설에 대해서도 회사 측은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정부가 추진하는 비수도권 반도체 전략이 단순한 공장 유치 경쟁을 넘어 인력 양성, 협력업체 지원,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산업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 여부를 떠나 지역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향후 논의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