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글 홍승권 | 법률사무소 판 대표변호사 (skh@law-pan.com)
동네에서 오래 영업하던 식당의 주인이 어느 날 바뀌었다. 그런데 간판은 그대로다. 메뉴도 비슷하고 인테리어도 거의 그대로여서 손님 입장에서는 그냥 늘 다니던 그 가게로 보인다.
그런데 만약 이 가게가 이전 주인 시절 물품 공급업자에게 외상값을 남긴 채 넘어간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공급업자가 가게로 찾아갔더니 새 주인은 자신은 그 빚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전 주인에게 받으라고 한다. 그 사이 전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연락도 닿지 않는다. 납품업자는 그대로 손해를 떠안아야 할까.
오늘 이야기할 것은 이때 새 주인에게 빚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다.
상법 제42조는 영업을 양수받은 사람이 이전 주인의 상호를 계속 쓰는 경우, 그 영업과 관련해 생긴 채무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를 ‘상호 속용에 의한 양수인의 책임’이라고 부른다.
이런 규정을 둔 이유는 단순하다.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오랜 세월 특정 상호를 쓰는 사람과 거래해 온 사람들에게 그 상호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신용과 평판, 거래 이력 전부를 담은 일종의 얼굴과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같은 상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면 거래처는 그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다. 그 사이 외상값이 떼이거나 약속한 물건이 들어오지 않으면 꼼짝없이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이러한 책임이 인정될까. 여러 요건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우선 영업양도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영업양도가 있었는지는 여러 실질적인 관점에서 판단된다. 계약서의 제목이나 문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판례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업양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양수인이 유기적으로 조직화된 수익의 원천으로서의 기능적 재산을 이전받아 양도인이 하던 것과 같은 영업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거래처, 재고, 설비, 직원 등 해당 영업을 하는 데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들이 승계되었는지, 그래서 실질적으로 같은 영업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고려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상호가 계속 사용되고 있어야 한다. 글자 하나까지 똑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이 보기에 같은 가게로 느낄 정도로 핵심 부분을 사용하고 있으면 충분하다. 따라서 어느 부분이 상호의 핵심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이는 결국 영업양도가 이루어진 경위를 포함해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 즉 채권자 입장에서 오인 가능성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본다. 오랫동안 호텔업을 운영해 온 회사가 경영난에 빠지자, 다른 사업자가 영업을 인수해 같은 건물에서 호텔 영업을 계속했다. 호텔 이름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그대로 남았고, 직원은 승계되지 않았지만 객실과 거래처는 사실상 그대로 이어졌다.
호텔을 인수한 사람은 이전 호텔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채무를 고의적으로 회피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기존 호텔에 채권을 갖고 있던 업체가 있다면 새로운 호텔에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을까.
앞에서 영업양도는 실질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호텔에서 직원, 객실, 거래처는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객실과 거래처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객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호텔에 물품을 납품하거나 세탁을 제공하는 업체들과의 거래 관계가 그대로 이어져 왔는지, 객실 예약 플랫폼 등이 승계되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또 호텔 이름의 핵심 부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위 영업양도에서 고려된 기준들을 포함해 호텔에 채권을 갖고 있던 업체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해당 업체가 자신의 채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는지, 그 업체가 이전 호텔을 지금의 호텔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었는지, 이전 호텔과 지금의 호텔이 채무 이행을 고의적으로 회피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는지도 고려될 수 있다.
위에서 나름의 기준을 적어 보았지만 실제로 영업양도와 상호 속용을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문제이므로 충분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상호 속용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선의로 영업을 양수한 사람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상법은 양수인이 영업을 인수하면서 이전 채무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등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영업을 양수했다면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안전하다.
필자 소개
홍승권은 법률사무소 판의 대표변호사다. 민·형사 소송을 포함해 디지털 시대에 부상하는 새로운 법적 과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는 기술 혁신, 재산권 질서, 규제 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