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3부 |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
4부 | 회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람
5부 | 폭행을 당했을 경우 유의할 점
6부 | 형사합의금, 얼마가 적당한가
7부 | 술자리 이후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준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8부 | 프리랜서와 퇴직금
9부 | 사업상 자금 융통으로 채권을 양도하는 경우 주의할 점
10부 | 외국인 배우자가 도망갔을 때, 이혼할 수 있을까?
11부 | 집주인이 수리를 미룬다면…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12부 | 원사업자가 잠적한 경우, 수급사업자는 대금을 받을 수 있을까?
13부 | 경찰 조사를 처음 받는다면 알아야 할 것들
14부 | 토지거래허가구역 계약, 허가 전에도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15부 | 범죄 목적을 숨기고 들어간 타인의 주거, 주거침입인가?
16부 | 타인을 사칭하여 인스타 계정을 개설하는 경우도 처벌될 수 있다
17부 | 강제추행은 언제 성립할까?
18부 | 누수가 발생해 공사를 해야 할 때, 임차인이 공사 방법까지 결정할 수 있을까?
19부 | 공인중개사의 설명의무는 어디까지인가?
20부 | 주택가에서 욕설하면 모욕죄가 성립할까?
21부 | 세무사와 위임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상담만 받은 경우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22부 | 무연고로 개장된 조상 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글 | 홍승권 법무법인 판 변호사 (skh@law-pan.com)
우리나라에서는 분묘를 둘러싼 분쟁이 종종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가족이 관리해 온 분묘가 어느 날 무연고 분묘로 처리돼 개장되거나 유골이 화장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해당 토지에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는지, 나아가 분묘를 개장한 토지소유자나 이를 허가한 행정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가 함께 문제가 됩니다.
우선 살펴볼 개념은 제사주재자입니다. 제사주재자는 법적으로 조상의 분묘와 제사용 재산을 수호·관리하는 지위와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분묘가 훼손되거나 무단으로 개장된 경우, 누가 그 침해를 이유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 제사주재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과거에는 종손을 중심으로 제사주재자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공동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나 적서를 구별하지 않고 최근친이 제사주재자가 됩니다. 같은 촌수의 직계비속이 여러 명이라면 연장자가 우선합니다. 다만 판단의 기준이 되는 시점은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때이므로, 지금도 과거의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분묘기지권입니다. 분묘기지권은 타인의 토지 위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그 분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봉행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관습법상 물권입니다. 분묘를 설치할 당시 토지소유자의 승낙이 있었던 경우는 물론, 승낙이 없더라도 분묘가 장기간 평온·공연하게 존속해 왔다면 시효취득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2001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에는 분묘기지권의 인정에 일정한 제한이 생겼습니다. 다만 법률 시행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는 여전히 분묘기지권이 인정될 수 있어 법적 의미가 있습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는 일정한 요건 아래 타인의 토지에 설치된 분묘를 개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일정 기간 공고 등의 절차도 거쳐야 합니다.
문제는 토지소유자가 이러한 분묘를 무연고 분묘라고 판단해 개장한 경우입니다. 분묘는 그 특성상 산에 있는 경우가 많고, 연고자가 1년에 한두 번 정도 벌초를 위해 방문하는 것 외에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토지소유자도 연고자가 있는 분묘를 무연고 분묘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연고자 역시 분묘를 자주 방문하지 않기 때문에 공고 절차를 거쳤더라도 이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에서 정한 공고 절차를 거쳤다고 해서 민사상 책임까지 언제나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연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의도적으로 무연고 분묘로 처리했다면 민법상 불법행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행정기관도 법령상 요구되는 심사나 조사를 현저히 소홀히 해 위법한 허가를 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문제 될 여지가 있습니다. 반대로 법령상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쳤고 당시의 객관적인 사정만으로는 연고자의 존재나 분묘기지권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묘가 무단으로 개장된 경우에는 정신적 손해도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오랜 기간 관리해 온 조상의 묘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파헤쳐지고, 유골이 화장돼 다른 장소에 봉안됐다면 유족은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개장 과정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유골을 직접 수습하고, 화장이나 봉안 장소를 결정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다는 사정은 위자료를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분묘는 조상을 추모하고 가족의 기억을 이어가는 장소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적 의미가 곧바로 법률상 권리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분묘가 무단으로 개장됐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그 분묘에 관해 어떤 법적 지위를 갖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필자 소개
홍승권은 법무법인 판 소속 변호사로, 민사·형사소송을 비롯해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법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술 혁신과 재산권 질서, 규제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