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증권이 발행어음 사업에 뛰어들면서 대형 증권사들의 단기금융 시장 경쟁이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까지 4개사에 그쳤던 발행어음 사업자가 최근 1년 사이 9개사로 늘어나면서 고객 자금 확보와 조달 자금의 운용처를 둘러싼 경쟁이 동시에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정례회의에서 메리츠증권을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로 지정하고 단기금융업을 인가했다. 이에 따라 메리츠증권은 국내에서 발행어음 사업을 할 수 있는 9번째 증권사가 됐다.
발행어음 사업자는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 등 8조원 이상 종투사 3곳과 KB증권·키움증권·신한투자증권·하나증권·삼성증권 등 4조원 이상 종투사 5곳에 메리츠증권이 추가되는 구조다. 삼성증권도 이달 초 인가를 받으며 시장에 합류했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금융상품이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종투사 가운데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만 취급할 수 있으며,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발행할 수 있다. 조달한 자금은 기업대출이나 회사채, 지분투자 등 기업금융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사업자 확대는 고객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증권사 간 금리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후발 주자들이 신규 고객을 겨냥한 고금리 특판 상품을 선보이면서 발행어음이 증권사의 새로운 자금조달 창구이자 고객 유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발행어음 잔액은 55조9291억원으로 1년 전보다 26% 증가했다. 사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시장 자체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증권사들이 확보할 수 있는 자금 규모도 커지고 있다.
다만 조달 경쟁이 심화될수록 자금 운용의 중요성도 커진다. 고객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리가 높아지면 증권사는 조달 비용을 웃도는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금융과 회사채, 지분투자 등 생산적 금융 분야에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발굴하는 역량이 발행어음 사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도 발행어음 시장 확대와 함께 자금 운용 방향을 생산적 금융 중심으로 바꾸는 규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는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 조달액에 상응하는 국내 모험자본 공급 의무를 올해 10%에서 2027년 20%, 2028년 25%로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중소·중견기업 자금 공급과 벤처캐피털·신기술금융회사 투자, 일정 등급 이하 회사채 투자 등이 모험자본 공급 대상에 포함된다.
부동산 관련 운용 비중은 반대로 축소된다. 발행어음 운용자산의 부동산 관련 자산 한도는 올해 15%로 낮아지고 2027년부터 10%가 적용될 예정이다. 기존 30%에서 단계적으로 낮춰 부동산 중심의 자금 운용을 줄이고 기업과 혁신 분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메리츠증권 역시 발행어음 사업을 통해 조달 기반을 확대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업금융 투자처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지난해 7월 단기금융업 인가를 신청했지만 관련 수사와 금융감독원 검사 등의 영향으로 심사가 지연됐고, 이달 심사가 재개된 뒤 최종 인가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사업자가 9곳으로 늘어난 만큼 향후 경쟁의 초점이 단순한 발행 규모 확대에서 조달 비용 관리와 투자처 다변화, 기업금융 역량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발행어음 시장이 대형 증권사의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을 넘어 기업금융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