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고의 한계를 넓힐 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부)
AI가 사고의 한계를 넓힐 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부)
  • Korea IT Times 편집국
  • 승인 2026.09.20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순서

① AI가 사고의 한계를 넓힐 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글 | 임병민(IBM) 칼럼니스트

필자는 IT 분야에서 50년 가까이 일하면서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챗GPT가 등장하기 2년 전부터 인간과 인공지능(AI)의 정보처리 능력 차이를 이동 속도에 빗대어 설명해 왔다. 인간이 생각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를 시속 15km라고 가정하면, AI는 시속 800km로 이동하는 비행기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은 하루 종일 걸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비행기는 짧은 시간에 이동한다. 그렇다고 비행기가 인간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는 인간이 만든 도구이며, 인간이 정한 목적지와 항로에 따라 움직인다. AI 역시 인간이 설정한 문제와 제공한 정보, 지시의 범위 안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AI는 방대한 자료를 짧은 시간에 읽고 비교하며 일정한 패턴을 찾아 새로운 형태로 연결한다. 시속 15km와 800km는 과학적으로 측정한 수치가 아니지만, 인간과 AI의 정보처리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비유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가보다 그 속도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에 있다. 비행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면 목적지에서 더 빠르게 멀어진다. AI도 목표와 전제가 잘못 설정되면 오류를 신속하게 확대하고, 그럴듯한 결과를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방향 설정과 중간 점검의 중요성도 커진다.

결과가 넘칠수록 판단이 희소해진다

인간은 AI와 계산 속도나 자료 검색 능력을 놓고 경쟁할 필요가 없다. 자료 분류, 요약, 번역, 초안 작성, 반복 계산은 AI가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인간에게는 무엇을 질문할지 결정하고, 문제의 본질을 찾아내며, 여러 선택지 가운데 어떤 결과가 목적과 가치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역할이 남는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과거에는 시장조사와 경쟁사 분석, 고객 수요 파악, 사업계획서 작성에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했다. AI는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시장의 흐름을 비교하며 사업 아이디어별 장단점과 예상 위험을 빠르게 제시할 수 있다. 몇 주가 걸리던 준비 작업을 며칠이나 몇 시간으로 줄이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AI가 빠르게 작성한 시장분석이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분석에 사용된 자료가 오래됐거나 특정 시장에 편중됐을 수 있고, 통계에는 고객의 실제 행동과 현장의 예외가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다. AI는 여러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누구를 위한 사업을 만들 것인지, 어느 수준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사업의 목적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돌아온다.

AI가 발전할수록 결과물을 만드는 비용은 낮아진다. 보고서, 이미지, 프로그램 코드, 사업 아이디어를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그 결과 조직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결과를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결과를 선택하고 무엇을 폐기했는가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생산 능력이 보편화되면 검증과 판단이 더 희소한 능력이 된다.

인간이 담당해야 할 판단은 단순한 승인 절차가 아니다. AI가 어떤 전제에서 답을 만들었는지 확인하고, 출처와 사실관계를 검증하며, 빠진 이해관계자와 예상하지 못한 영향을 살펴야 한다. 법률·의료·금융·언론처럼 오류의 파급력이 큰 분야에서는 결과를 만든 속도보다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질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교육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학생이 AI가 작성한 답을 그대로 제출하면 과제는 빨리 끝나지만, 사고의 과정은 사라질 수 있다. 학생이 먼저 자신의 견해를 세우고 AI에 반론과 취약점을 요청하면 AI는 생각을 대신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도구가 된다.

“내 주장에 논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 “반대되는 관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내가 놓친 질문은 무엇인가”, “다른 산업에서는 비슷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AI는 사용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의 빈틈을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과 답을 검증하는 능력이 교육의 핵심으로 이동한다.

직장에서도 문서 초안 작성, 회의 내용 정리, 자료 분류, 데이터 분석, 번역, 일정 관리 등은 AI가 상당 부분 보조할 수 있다. 사람은 고객과 대화하고, 동료와 협력하며,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새로운 전략을 만들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일도 인간의 몫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따른다. AI가 절약한 시간이 자동으로 더 깊은 사고와 창의적인 업무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조직이 절약된 시간만큼 더 많은 보고서와 회의를 요구하면 AI는 업무의 질을 높이는 도구보다 업무량을 늘리는 장치가 될 수 있다. AI 도입의 성과는 처리 건수뿐 아니라 판단의 질, 오류 감소, 고객과의 소통,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데 사용한 시간으로 평가해야 한다.

AI가 돌려준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AI의 큰 가치는 인간의 시간을 되돌려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인간에게 부족한 것은 능력만이 아니다. 하루 대부분을 반복 업무에 사용하면 질문하고 관찰하며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킬 시간이 줄어든다. AI가 반복 작업을 처리하면 인간은 문제의 원인을 살피고 장기적인 결과를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인간의 경험과 AI의 계산 능력을 결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은 기쁨과 슬픔, 실패와 성공, 관계의 갈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외를 직접 경험한다. AI는 방대한 자료에서 패턴을 찾을 수 있지만, 그 결과가 한 사람의 삶이나 조직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체험하지는 못한다. 현장의 맥락을 제공하고 분석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은 인간에게 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인간은 목적지를 정하고 AI는 강력한 엔진과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한다. AI는 여러 경로를 계산하고 교통 상황을 분석해 더 빠른 길을 제안할 수 있다. 인간은 어느 길이 안전한지,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 그 목적지에 가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앞으로 AI는 더 많은 종류의 데이터를 이해하고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며 인간과 더욱 자연스럽게 협업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달라진다. 지식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는가보다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AI의 결과를 검증하며, 서로 다른 가치 사이에서 책임 있게 결정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AI가 시속 800km로 날아가는 비행기라면 인간은 조종사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항로를 설계하고 목적지를 선택하며, 비행을 계속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속도를 늦추거나 경로를 바꾸고, 출발 자체를 다시 검토할 수도 있어야 한다.

AI가 인간의 생각을 확장해 줄수록 인간의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결과를 생산하는 일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결과를 검증하며, 선택에 책임지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AI가 얼마나 빠르게 답을 내놓는가보다 인간이 그 답을 통해 무엇을 더 정확하게 보고 더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것이 AI 시대에 인간이 맡아야 할 일이다.

영문판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Independent journalism on technology, industry and the forces reshaping Korea and the world.
  • Korea IT Times Co., Ltd. | 34 Gukjegeumyung-ro 8-gil, Yeongdeungpo-gu, Seoul, Republic of Korea
  • Business Registration No. 206-86-32195
  • Tel. +82-2-578-0434 | 010-2442-9446 | info@koreaittimes.com
  • Publisher & Editor-in-Chief: Younsoo Chung | Youth Protection Manager: Choul-woong Yeon
  • ©2004–2026 Korea IT Times.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