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공동 취재팀
올해 COMPUTEX 2026 전시장을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AI가 더 이상 화면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시장의 주인공은 노트북과 그래픽카드, 서버였다. 지난해에는 생성형 AI와 대규모언어모델(LLM)이 모든 대화를 지배했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AI가 직접 움직이고 있었다.
난강전시장(TaiNEX) 곳곳에서는 로봇이 사람을 따라 이동했고, 산업용 기계는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했다. 일부 로봇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과 대화를 나누며 다음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COMPUTEX 2026은 단순한 IT 전시회가 아니라 AI가 물리적 세계로 진입하는 출발점처럼 보였다.
올해 행사에는 33개국 이상에서 약 1,500개 기업이 참가했고 6,000개 이상의 부스가 마련됐다. 주최 측은 150개국에서 8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올해 슬로건인 ‘AI Together’였다.
표면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협력을 의미하지만, 현장에서 느껴진 의미는 조금 달랐다. AI가 혼자 발전하는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AI 반도체 기업, 로봇 기업, 자동차 기업, 서버 기업, 데이터센터 기업이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AI 경쟁의 무대가 모델 성능 자체에서 실제 산업 적용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가장 붐빈 곳은 AI Robotics Zone
올해 처음 마련된 AI Robotics Zone은 전시장 전체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받은 공간 가운데 하나였다. 관람객들은 엔비디아 Jetson 플랫폼 기반 로봇 앞에 긴 줄을 만들었다. ASUS와 Advantech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은 물류와 제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산업용 로봇을 공개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로봇들이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과거 산업용 로봇이 사전에 입력된 명령을 반복 수행했다면, 이번 전시의 로봇들은 자연어를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행동을 바꾸고 있었다. 한 로봇은 관람객의 질문에 답변한 뒤 스스로 작업 우선순위를 결정해 움직였다.
전시장 관계자는 “이제 로봇은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탑재된 물리적 컴퓨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로봇이 단순 자동화 장비에서 자율적 판단을 수행하는 산업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엔비디아와 퀄컴이 동시에 말한 한 단어
올해 COMPUTEX에서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생성형 AI도, LLM도 아니었다. ‘Agentic AI’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조연설에서 “2026년은 Agentic AI의 원년”이라고 선언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날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 역시 사실상 동일한 메시지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두 기업 모두 AI가 질문에 답변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생성형 AI 이후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AI 산업의 경쟁 기준이 모델의 언어 능력에서 실제 행동 능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핵심은 AI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말하는가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은 데이터센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또 다른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AI 인프라 경쟁이다. AI 모델 규모가 커질수록 전력과 발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번 COMPUTEX에서는 서버를 액체 속에 담가 냉각하는 침전식 액체 냉각 기술이 대거 등장했다.
관람객들은 거대한 서버가 특수 냉각액 안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마벨을 비롯한 기업들은 초고속 광학 인터커넥트 기술을 공개하며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AI 산업의 미래가 단순히 더 똑똑한 모델이 아니라 더 많은 전력과 더 빠른 연결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만 공급망과 실리콘밸리가 만드는 새로운 질서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COMPUTEX를 “Physical AI 상용화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평가했다. TSMC와 미디어텍, 폭스콘으로 대표되는 대만의 제조 역량과 엔비디아, 퀄컴, AMD 등 미국 기업들의 AI 플랫폼이 하나의 생태계로 결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생성형 AI는 화면 속 챗봇이었다. 그러나 올해 전시장에서는 AI가 로봇이 되고, 자동차가 되고, 공장이 되고 있었다. COMPUTEX 2026은 단순한 신제품 발표 행사가 아니었다. AI가 사람과 대화하는 시대에서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시대로 넘어가는 현장을 보여준 산업 전환의 기록에 가까웠다.
전시장 곳곳에서 확인된 변화는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되고 있었다. AI 산업의 다음 경쟁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AI를 얼마나 많이 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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