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3부 |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
4부 | 회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람
5부 | 폭행을 당했을 경우 유의할 점
6부 | 형사합의금, 얼마가 적당한가
7부 | 술자리 이후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준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8부 | 프리랜서와 퇴직금
9부 | 사업상 자금 융통으로 채권을 양도하는 경우 주의할 점
10부 | 외국인 배우자가 도망갔을 때, 이혼할 수 있을까?
11부 | 집주인이 수리를 미룬다면…임대차 계약 해지 가능할까?
12부 | 원사업자가 잠적한 경우, 수급사업자는 대금을 받을 수 있을까?
13부 | 경찰 조사 처음 받는다면 알아야 할 것들
14부 | 토지거래허가구역 계약, 허가 전에도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글 | 홍승권 변호사, 법무법인 판 (skh@law-pan.com)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토지를 유상으로 거래할 때에는 시장·군수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제11조가 이를 정하고 있으며, 허가 없이 체결된 계약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언만 보면 허가를 받지 않은 계약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법원은 여기에 '유동적 무효'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허가를 받기 전 단계의 계약은 물권적 효력은 물론 채권적 효력도 아직 발생하지 않지만, 이후 허가를 받으면 계약은 소급해 처음부터 유효한 계약이 된다. 즉 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유효도 무효도 아닌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유동적 무효 상태에서 당사자가 계약을 해제하고 싶을 때 발생한다. 매수인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수 있고, 매도인은 더 좋은 조건의 매수인을 만나 계약금의 배액을 돌려주고 계약을 해제하고 싶을 수도 있다.
대법원은 유동적 무효 상태에서도 계약금(해약금)에 의한 계약 해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민법 제565조는 당사자 사이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이행에 착수하기 전까지 계약금을 준 사람은 이를 포기하고, 받은 사람은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이 계약 일반에 적용되는 법리인 만큼, 유동적 무효 상태의 매매계약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러한 계약해제는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하기 전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몇 가지 논란이 되는 상황이 있다.
먼저 계약금만 주고받은 상태에서 당사자가 허가를 신청해 실제로 관할관청의 허가까지 받은 경우다. 허가를 받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은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허가를 받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아직 이행에 착수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매도인은 여전히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계약이 유효하게 확정되었더라도 계약금만 지급된 단계라면 해제의 여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취지다.
다음으로 일방이 상대방을 상대로 허가 협력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경우가 있다. 재판에서 승소했으니 계약 이행에 착수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대법원은 1심 승소판결만으로는 계약 이행에 착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계약금에 기한 계약 해제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매수인이 매도인의 계약 해제를 막기 위해 서둘러 잔금을 공탁한 경우다. 이 역시 적법한 이행의 착수로 인정되지 않는다. 유동적 무효 상태의 계약은 허가가 있을 때까지 계약 내용에 따른 중도금이나 잔금 지급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급하지 않더라도 계약 위반이 되지 않으며, 반대로 지급기일 전에 미리 지급하더라도 이를 계약의 이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필자의 경험상 이러한 문제는 부동산 거래에서 시세 변동으로 인해 어느 한쪽이 계약을 해제하고자 할 때 주로 발생한다. 따라서 '중도금 지급 이후에는 해약금에 의한 계약해제를 할 수 없다'는 취지의 조항을 두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거래 금액이 클수록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해제 관련 특약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결과를 좌우하므로, 이 부분은 변호사의 검토를 받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 소개
홍승권 변호사는 법무법인 판 소속 변호사로 민사·형사 소송을 비롯해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제기되는 다양한 법률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술 혁신과 재산권 질서, 규제 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