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에서 라커룸까지 — 블랙록의 토큰화 전략이 팬 토큰에게서 배운 것
월스트리트에서 라커룸까지 — 블랙록의 토큰화 전략이 팬 토큰에게서 배운 것
  • 정연수 특파원
  • 승인 2025.10.16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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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핑크

최근, 블랙록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가 “향후 10년, 모든 금융자산이 토큰화될 것”이라고 단언했을 때, 그는 단순히 트렌드를 언급한 것이 아니었다. 한때 암호화폐를 “자금세탁의 도구”라 폄하했던 월스트리트의 거인이 이제 블록체인을 다음 세대의 금융 인프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핑크는 CNBC 인터뷰에서 “부동산부터 주식, 채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산의 토큰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전통 자산을 블록체인 상에 디지털화해 운용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3조 4,6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굴리는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은 이미 약 28억 달러 규모의 토큰화 현금 시장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월스트리트조차 더 이상 블록체인을 “대안적 실험”으로만 볼 수 없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 이 혁신의 씨앗이 이미 몇 년 전, 축구 경기장의 라커룸에서 뿌려졌다는 것이다.

팬 토큰: 토큰화의 원형 설계도

2018년, 암호화폐 시장이 초기 코인 공개(ICO) 열풍에 휩싸였을 때, 스포츠 블록체인 스타트업 칠리즈(Chiliz)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투자 대신 ‘팬들의 응원’을 토큰화했다.

1년 후인 2019년, 유럽 축구 강호 유벤투스와 파리 생제르맹이 자체 팬 토큰($JUV 및 $PSG)을 출시했다. 블록체인을 통해 팬들은 팀 슬로건 투표, 독점 상품 구매, 회원 전용 이벤트 참여 등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클럽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팬 토큰은 중개자를 제거하고 거래 비용을 절감하며 모든 상호작용을 온체인에 기록했다.

스포츠파이(SportFi)가 선두에 선 이유

오늘날 스포츠파이 생태계는 10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현재 70개 이상의 주요 스포츠 단체가 칠리즈(Chiliz)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경기장이 아닌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칠리즈는 최근 e스포츠 팀 OG를 인수하며, 시가총액 1억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e스포츠 토큰이라는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단순히 디지털 굿즈를 파는 것이 아니라, 팬 참여가 곧 자산 가치로 환원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전통 금융이 이제서야 “모든 것을 토큰화”하겠다고 나선 지금, 스포츠 업계는 이미 수년 전부터 토큰을 통해 참여와 소유의 경계가 사라진 경제 모델을 실험해온 셈이다.

월스트리트가 라커룸을 따라간다

이제 블랙록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한때 비트코인을 투기 수단으로 일축했던 핑크는 이제 이를 “디지털 골드”라 부른다. 블록체인 기반 자산 관리는 위험한 실험에서 전략적 필수 요소로 전환됐다.

토큰화가 전통적 금융을 재편함에 따라, 2030년대의 금융 세계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자산은 마찰 없이 국경을 넘나들 것이며, 투자자들은 온체인 보관으로 포트폴리오를 보호하고, 스마트 계약을 통해 규제 준수가 자동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 미래의 청사진은, 어쩌면 이미 스포츠 클럽의 팬덤 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블랙록이 배워야 할 라커룸의 교훈

블랙록이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신뢰를 디지털 영역으로 전환하는 방법, 즉 참여의 자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이다.

팬 토큰은 감정적 충성도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했으며, 블록체인은 그 신뢰를 불변의 형태로 보존했다. 자본이 월스트리트에서 블록체인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진정한 혁신은 코드가 아닌 구조에 있다. 가치, 신뢰, 참여가 교차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데 있다.

핑크의 선언이 향후 10년을 예고한다면, 그 시작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팬들이 사랑하는 팀을 위해 처음으로 버튼을 눌렀던 그 순간, 이미 금융의 미래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정연수 밴쿠버 특파원/ North America Bureau Chief, Korea IT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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