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익만 110조원 육박 추정… 메모리 공급 부족 장기화로 추가 신기록 가능성
삼성전자가 사상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을 넘어섰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데다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가격까지 상승하면서 전례 없는 실적을 만들어냈다.
삼성전자는 8일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195조원,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126.6%, 영업이익은 782.5% 증가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매출은 13.7%, 영업이익은 20% 늘었다.
분기 영업이익이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이다. 글로벌 테크기업을 통틀어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규모다. 직전 분기 삼성전자가 기록한 89조4924억원의 영업이익도 단 한 분기 만에 다시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4분기부터 시작된 사상 최대 실적 경신 행진이 4개 분기째 이어졌다는 점도 눈에 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254조원을 넘어섰고, 누적 매출 역시 500조원을 돌파했다.
이번 실적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메모리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사업부별 세부 실적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이 전체 실적을 사실상 이끌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메모리 사업에서만 100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했고, 기존 D램 시장까지 공급 부족 현상이 확산됐다. 여기에 메모리 업체들이 제한된 생산능력을 HBM 등 고부가 제품에 집중하면서 범용 메모리 공급도 빠듯해졌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가격이 뛰었고, 삼성전자는 판매량 증가와 가격 상승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누리게 됐다.
이번 3분기 실적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차세대 HBM인 HBM4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AI 가속기에 필요한 막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고성능 메모리다. AI 모델이 고도화되고 데이터센터에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폭증하면서 HBM은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는 HBM4 공급을 확대하면서 AI 메모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에 탑재되는 HBM4 공급이 본격화되면서 3분기부터 관련 매출이 실적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HBM4는 단순히 메모리 사업의 성장만 의미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HBM4에 자체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한 베이스 다이를 적용하고 있어 HBM 판매가 늘어날수록 파운드리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만의 사업 구조를 강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범용 D램 시장의 가격 상승세도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AI용 HBM 생산이 늘어나면서 메모리업체들이 생산능력을 고부가 제품에 우선 배정했고, 그 결과 일반 서버와 PC 등에 들어가는 범용 D램의 공급 여력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이 같은 공급 제약 속에서 수요가 유지되면서 D램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HBM에 비해 상대적으로 범용 제품으로 분류되는 D램까지 가격이 오르면서 메모리 사업 전체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여기에 HBM처럼 단가가 높은 제품의 비중까지 확대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이익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에서 메모리 외에 파운드리도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사업은 메모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HBM4 생산이 확대되면 베이스 다이 생산과 첨단 패키징 등 관련 공정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결합한 공급 구조가 확대될 경우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AI용 반도체 시장이 단순히 GPU와 HBM의 경쟁을 넘어 패키징과 파운드리, 메모리를 하나의 공급망으로 묶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의 종합 반도체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실적이 전 사업부의 고른 성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반도체 가격 상승은 DS부문에는 호재지만 스마트폰과 TV, 가전 등 완제품 사업에는 오히려 부담이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메모리를 구매해야 하는 DX부문 입장에서는 반도체 가격 상승이 곧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가전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제품 가격을 원재료 가격 상승분만큼 올리기는 쉽지 않다.
결국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는 동시에 완제품 사업에서는 원가 부담이 커지는 구조를 맞게 됐다.
이는 이번 100조원대 영업이익이 삼성전자 전체 사업의 균형 잡힌 성장이라기보다는 AI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반도체 사업의 수익성을 압도적으로 끌어올린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실적 신기록 행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지만 메모리 생산능력을 즉각적으로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규모 생산라인 증설에는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만큼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메모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장기공급계약도 확대되는 추세다. 안정적인 메모리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는 고객사가 늘어나면 메모리 제조업체의 가격 협상력 역시 높아질 수 있다.
AI 시장의 성장세가 유지되고 메모리 공급 부족이 이어진다면 삼성전자의 실적은 4분기 이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이미 254조원을 넘어선 만큼 연간 영업이익 300조원 돌파도 현실적인 목표로 떠올랐다.
다만 사상 최대 실적이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메모리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인 만큼 공급 확대가 본격화되면 가격 상승세가 둔화될 수 있다. HBM 역시 경쟁 업체들의 생산능력이 확대되면서 기술력과 수율, 고객사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로서는 HBM4 시장에서 현재의 성장세를 이어가는 동시에 차세대 제품에서도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과제다.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실적 구조를 완화하고 스마트폰·가전 등 DX사업의 수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숙제도 남아 있다.
결국 이번 3분기 실적은 삼성전자가 AI 시대의 최대 수혜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를 통해 새로운 이익 기록을 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이라는 숫자는 삼성전자의 과거 실적과 비교해도, 글로벌 테크기업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준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100조원을 넘었느냐’에서 ‘100조원대 이익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로 옮겨갈 전망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되는 한 메모리 수요는 당분간 견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전자가 이번 슈퍼사이클을 차세대 성장 기반으로 얼마나 확실하게 연결하느냐가 향후 실적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 사업부별 세부 실적과 함께 3분기 경영 성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