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권 변호사 칼럼 |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
홍승권 변호사 칼럼 |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
  • Korea IT Times 편집국
  • 승인 2026.04.0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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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어떻게 검증되나… 무죄 추정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사이의 긴장을 다시 본다

글의 순서

Part 1 | 홍승권 변호사의 "AI가 들어온 법조 현장"

Part 2 | 변호사는 AI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Part 3 | AI와 변호사의 역할 분담

Part 4ㅣAI 법률상담 시대, 변호사와 AI 협업이 필요한 이유

Part 5ㅣ인공지능 기본법, 무엇이 처벌되나? 과태료 3천만원 적용 기준

Part 6 | 형사전자소송 시작…수사기록 전자화가 관건

Part 7 | 공동대표이사 해임,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Part 8 | 보증금 1,000만 원이면 소액임차인일까…상가 ‘환산보증금’이 기준

Part 9 | 부동산 등기에 공신력이 없다?

Part 10 | 가계약금 냈는데 계약이 깨지면? 반환 범위와 해제 기준

Part 11 | 소액임차인 보호, 어디까지 가능한가

Part 12 |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

 

글 홍승권 | 판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skh@law-pan.com)

법원에서 확정적으로 유죄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 피의자와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 이는 헌법 제27조 제4항과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에 규정돼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국가의 형벌권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근본적인 안전장치이자,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원칙이 도출된다. 그 결과 법원은 사안을 진실 그대로 규명하지 못했을 때는 물론이고, 법 해석이 모호한 경우에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와 개인 사이의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선 피의자·피고인은 본질적으로 약자다. 우리는 과거 약자들이 자백을 강요당하거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유죄로 몰릴 위험에 직면했던 사례들을 알고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횡령 사건의 예를 생각해 보자. 피고인이 회사 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는 경우, 법원은 피고인에게 회사 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검사가 피고인이 회사 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피고인의 해명이 다소 석연치 않더라도, 검사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법원은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성범죄 사건에서 진술의 신빙성은 어떻게 검증되나

그런데 성범죄 사건에서는 이 원칙이 온전히 관철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 외에 다른 객관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제로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면, 그것만으로도 수사 과정에서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 역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경우 이를 근거로 유죄를 인정해 온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오랫동안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경험은 내 생각을 조금 바꿔 놓았다. 성범죄 피해자의 대리인으로서 직접 조사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의자 조사가 아니라 피해자 조사였기 때문에 다소 마음을 놓고 있었다. 수사관이 피해자를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그 예상은 빗나갔다. 수사관의 태도가 예상보다 훨씬 엄격하고 진지했기 때문이다.

조사는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수사관은 사건 당일의 동선, 장소의 구조, 당시의 심리 상태, 피해자가 기억하는 사건의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끈질기게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도 2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지만 조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사관은 처음부터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방금 몇 시간 동안 했던 진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반복하게 한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동행했던 필자조차 내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곧바로 생각을 고쳐야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범죄는 그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진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사기관은 진술이 지닌 한계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론을 갖추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만약 피해자가 앞서 한 진술과 뒤에 한 진술 사이에서 차이의 모순을 드러낸다면, 그만큼 진술의 신빙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몇 시간에 걸친 반복 조사에서도 진술이 일관되게 유지된다면, 그 진술은 그만큼 강한 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딜레마 앞에서, 수사관들은 최대한 공정한 수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 노력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한낮에 시작한 조사가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나는 모습을 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저자 소개
홍승권은 법률사무소 판의 대표변호사다. 민사·형사 소송은 물론 디지털 시대에 떠오르는 새로운 법적 과제를 다루고 있다. 기술, 재산권, 규제 정책이 바꾸는 법과 시장의 흐름을 꾸준히 짚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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