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성전자 노조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마라
[사설] 삼성전자 노조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마라
  • Korea IT Times
  • 승인 2026.03.3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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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주도권을 가르는 냉혹한 경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요동치고, 기술 패권 경쟁은 국가 간 충돌에 가까운 수준으로 격화됐다. 이런 절박한 국면에서 삼성전자 노조가 꺼내든 카드는 ‘파업’이다. 솔직히 말해, 이는 권리 행사를 넘어 상황 인식의 실패에 가깝다.

노동자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권리는 현실과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없다. 특히 반도체처럼 국가 경제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은 사소한 균열 하나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마치 평시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대와 산업의 무게를 전혀 체감하지 못한 채, 오직 내부 요구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사측은 경쟁사인 SK하이닉스보다 높은 수준의 보상까지 제시한 상태다. 이 정도면 최소한 협상의 여지를 넓히고, 현실적인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먼저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곧장 파업을 들고나오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사실상의 ‘압박 정치’다. 명분이 약한 상태에서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신호일 뿐이다.

문제는 이 같은 태도가 스스로의 정당성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미 충분히 좋은 조건을 받고 있음에도 더 요구하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공감은커녕 반감만 키우는 선택이다. 권리는 설득 위에서 힘을 얻는 것이지, 무리한 강경책 위에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타이밍이다. ‘초일류’를 자부해온 삼성전자가 지금 HBM 경쟁에서조차 확실한 우위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AI 시대의 핵심 부품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건 단순한 사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 먹거리와 직결된 생존의 문제다. 이런 시기에 내부에서 생산 차질 가능성을 키우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위기 대응이 아니라 위기 증폭이다.

여기에 더해 시장의 시선도 심상치 않다. 삼성전자 주가는 기대와 달리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약 400만 명에 달하는 개인 주주들의 불안감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회사의 성과와 미래에 직접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이라는 불확실성까지 더해진다면, 기업 가치에 대한 신뢰는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노조의 선택이 단지 사측과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시장 전체에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외면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 문제는 단순히 ‘노사 갈등’에 그치지 않는다. 노조 내부에서도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더 심각하다. 강경 투쟁을 밀어붙이는 집행부와, 지금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보는 조합원들 사이의 시각차가 존재한다.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지금 파업이 과연 실익이 있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이견을 충분히 수렴하기보다, 강경 노선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대표성’ 자체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이쯤 되면 질문은 더 날카로워진다. 지금 노조는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조합원의 장기적 이익인가, 아니면 단기적 이익의 극대화인가. 눈앞의 보상을 조금 더 끌어올리기 위해, 그 보상이 계속 나올 수 있는 기반 자체를 흔드는 것은 아닌가. 황금알을 더 빨리 얻겠다고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과 무엇이 다른가.

협상은 전략이다. 타이밍, 명분, 그리고 균형 감각이 핵심이다. 그러나 지금의 노조는 이 세 가지를 모두 놓치고 있다. 외부 환경은 최악이고, 내부 조건은 이미 나쁘지 않으며, 그럼에도 선택한 수단은 가장 극단적이다.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뻔하다. 고립이다.

진정으로 조합원을 위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감정적 대결이 아니라 냉정한 계산, 구호가 아니라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현실을 외면한 채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인다면, 그 대가는 결국 노조 스스로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되돌리기 늦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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