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형중 고려대 교수
이 글은 필자의 원문을 바탕으로 Korea IT Times 보도 형식에 맞게 재구성한 버전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회의론은 대체로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간다.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고 효율적이며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지만, 막상 환급과 정산의 순간이 오면 결국 기존 금융 시스템의 문을 다시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비판이 도달하는 결론도 대체로 같다. 스테이블코인은 스스로 결제의 종결성에 이르지 못하는, 다시 말해 법정화폐 체계에 기대어 작동하는 미완의 수단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이처럼 단정적인 비판은 정작 더 큰 전제를 거의 묻지 않는다. 모든 결제는 결국 법정화폐로 마무리돼야 한다는 가정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미완성으로 보이는 이유 역시 기술의 한계라기보다, 돈의 흐름은 마지막에 반드시 법정화폐로 끝나야 한다고 여겨온 기존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결제 종결성이라는 기준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제도의 산물
현재 금융 시스템에서 결제 종결성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로 최종 결제가 이뤄지는 순간 확보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스테이블코인은 구조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결국 기존 은행 시스템을 거쳐 법정화폐로 환전되기 전까지는 결제가 완전히 끝난 것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거래가 마지막에 반드시 중앙은행 화폐로 정리돼야 한다는 인식은 자연 법칙이 아니라 역사와 제도가 만들어낸 하나의 기준에 가깝다. 중세 유럽의 어음 네트워크나 19세기 민간 은행권의 병존 체계를 돌아보면, 경제 주체들은 시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결제의 종결성을 구성해 왔다. 돈이 어디에서 끝나는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제도 설계의 문제였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 점에서 오늘날 법정화폐 중심의 종결성 기준은 유일한 정답이라기보다, 중앙은행 체제가 장기간 우위를 점하면서 굳어진 역사적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이 기준에 미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어쩌면 새로운 수단이 낡은 잣대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미완성’으로 보이는 이유는 기술보다 제도에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독자적으로 거래를 확정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미완의 결제로 간주되는 이유는 기술보다 제도적 환경에 있다. 블록체인 위에서 이뤄지는 거래는 네트워크 내부에서는 이미 검증되고 확정되지만, 현실 경제의 주요 의무와 회계 단위는 여전히 법정화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연결고리가 세금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납세 의무는 법정화폐 기준으로 부과되고 이행된다. 이 말은 곧 디지털 자산 기반의 순환 구조가 일정 수준까지 확장되더라도, 제도경제와 만나는 지점에서는 다시 법정화폐 체계와 접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순환이 중간에서 끊기는 이유는 네트워크가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제도의 바깥으로 완전히 독립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기술의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다. 세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납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알고리즘의 한계가 아니라 세법과 행정 체계다. 실제로 미국 일부 주에서는 암호자산 기반 납세 허용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아직 제한적이지만, 적어도 결제 종결성의 기준이 처음부터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보여준다.
환전 중심 구조에서 순환 중심 구조로 옮겨갈 때 의미가 달라진다
스테이블코인의 성격은 그것이 어디에서, 얼마나 넓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거래소 안에서만 머무를 때 그것은 쉽게 임시적 수단이나 교환용 토큰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이 급여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지급하고, 소비자가 일상 재화를 같은 단위로 구매하며, 남은 자금이 다시 온체인 금융상품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가 형성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때 법정화폐 환전은 필수 절차가 아니라 선택지에 가까워진다.
이런 폐쇄형 순환 구조 안에서는 결제 종결성의 의미도 달라진다. 블록체인에서 확정된 거래는 제3자의 보증이 없어도 유효하며, 참여자 전원이 동일한 기록을 공유하고, 어느 한 기관도 이를 임의로 되돌릴 수 없다. 이는 결제 종결성이 전통적으로 요구해 온 핵심 조건인 비가역성과 공동의 합의를 이미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통 금융에서 중앙은행은 최종적으로 신뢰를 떠받치는 기관이기 때문에 종결성을 보증한다. 반면 블록체인에서는 그 신뢰가 특정 기관이 아니라 분산된 프로토콜로 옮겨간다. 충분한 규모의 순환과 사회적 수용이 뒷받침되는 환경이라면, 종결성은 더 이상 외부 제도에서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내부에서 생성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수용의 범위에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미완의 결제 수단인지 여부는 결국 어떤 전제를 놓고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거래는 최종적으로 법정화폐로 귀결돼야 한다는 전제를 유지하면,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을 보조하는 효율적 도구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일정한 규모의 순환경제 안에서 스스로 거래를 마감할 수 있는 체계로 본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화폐질서의 실험적 원형으로 읽힐 수 있다.
따라서 본질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디지털 자산 표시 임금을 수용할 수 있는지, 회계 제도가 온체인 거래 현실에 맞춰 조정될 수 있는지, 법체계가 분산원장 위에서 이뤄진 결제에 어디까지 최종 효력을 인정할 것인지가 더 근본적인 쟁점이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더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다. 입법과 제도, 그리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주저하는 사회다. 스테이블코인의 한계는 기술의 미성숙에 있다기보다, 돈의 마지막 마침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해 아직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