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시그널] 미국, 중국에 GPU 막았더니 AI 지식은 API로 빠져나갔다
[투데이 시그널] 미국, 중국에 GPU 막았더니 AI 지식은 API로 빠져나갔다
  • 정연수
  • Published 2026.09.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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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A·FBI·CISA, 중국 AI 6곳의 대규모 모델 증류 지목…API·클라우드 우회경로까지 국가안보 문제로

 

미국이 중국의 첨단 GPU 접근을 막는 동안 또 다른 통로가 열렸다. 미 정부는 중국 AI 기업들이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와 클라우드, 제3자 중계망을 이용해 미국 프런티어 AI 모델의 추론과 코딩, 에이전트 기능을 대규모로 추출했다고 주장했다. 첨단 반도체의 물리적 이동을 막아도 이미 학습된 AI 모델의 능력은 네트워크를 통해 이전될 수 있다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미 국가안보국(NSA), 연방수사국(FBI), 사이버보안·인프라보안국(CISA)은 9월 8일 공동 사이버보안 권고문 AA26-251A를 통해 DeepSeek, Moonshot AI, Alibaba, MiniMax, StepFun, Z.AI 등 중국 AI 기업 6곳의 대규모 모델 증류 활동을 공식 지목했다. 미국 당국은 이들 기업이 2024년 말부터 Claude, GPT, Gemini, Grok 등 미국 프런티어 모델을 대상으로 수백만 건의 요청을 보내 수십억 개의 토큰을 추출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가 이러한 활동을 인지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번 사안은 미국의 대중 AI 정책에 새로운 숙제를 던졌다. 지금까지는 중국이 얼마나 많은 첨단 GPU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통제 대상이었다. 앞으로는 중국 AI 기업이 미국 프런티어 모델의 능력에 얼마나 접근하고 이를 자체 모델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정책 변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GPU 수출통제 이후 API·클라우드·제3자 중계망을 통한 AI 모델 접근이 미·중 기술 경쟁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Korea IT Times 일러스트레이션

 

GPU 수출통제가 막지 못한 경로

미국은 고성능 GPU와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수출통제를 통해 중국의 첨단 AI 개발에 필요한 연산 자원 확보를 제한해왔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자체 AI 반도체 개발과 공급망 구축을 가속하고 있다. 최근 중국 AI 칩 기업에 대한 투자 열기가 높아진 것도 이러한 기술 자립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AI 모델은 반도체와 다른 방식으로 국경을 넘는다. 기업은 GPU를 직접 보유하지 않아도 API를 통해 해외의 고성능 모델을 사용할 수 있고, 클라우드나 제3자 중계 서비스를 이용하면 접근 경로는 더욱 복잡해진다.

모델 증류도 이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다. 증류는 성능이 높은 ‘교사 모델’이 생성한 결과를 이용해 더 작고 효율적인 ‘학생 모델’을 학습시키는 정상적인 AI 개발기법이다. 개발에 필요한 연산량과 비용을 줄이면서 특정 능력을 이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정부와 AI 기업들이 문제 삼는 것은 증류 기술 자체가 아니다. 허위 계정과 우회 접속망을 이용해 접근 제한을 피하고, 미국 프런티어 모델의 가치가 높은 기능을 허가 없이 산업적 규모로 추출했다는 의혹이다. Anthropic은 이를 정상적인 증류와 구분해 ‘불법적 증류(illicit distillation)’라고 규정하고 있다.

API·클라우드 뒤에 숨은 ‘중계망’

미국 정부가 이번 권고문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중국 AI 기업들이 미국 모델에 접근한 경로다.

직접 API뿐 아니라 원격 클라우드와 제3자 API 집계업체, 이른바 ‘transfer station’으로 불리는 프록시 서비스가 사용됐다는 것이 미국 측 판단이다. 이런 중계업체가 지역 제한과 계정 통제를 피하기 위해 다수의 계정과 접속경로를 제공하면서 실제 최종 사용자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Anthropic이 공개한 조사에서는 이 구조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회사는 중국에 기반을 둔 AI 연구소들이 허위 신원과 결제수단, 탈취된 API 키 등을 사용하는 프록시 네트워크를 통해 Claude에 접근했다고 밝혔다.

규모도 작지 않다. Anthropic은 Alibaba 관련 활동에서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1억5100만 건이 넘는 Claude 교환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Moonshot AI 관련 활동은 같은 기간 2300만 건 이상이었고, DeepSeek에서는 7월 14일 동안 1210만 건 이상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Z.AI와 관련해서도 6~7월 17일 동안 340만 건 이상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미국 정부의 확정된 사법 판단이 아니라 Anthropic이 자체 조사로 제시한 결과다.

Anthropic은 이에 대응해 의심스러운 계정을 하나씩 차단하는 방식에서 조직 단위의 계정망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방어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메타데이터와 비정상적인 사용 패턴을 분석하고, 모델 능력을 추출하려는 행위를 찾아내는 전용 탐지기도 구축했다고 밝혔다.

모델 지식에서 기업 데이터까지

더 민감한 문제도 드러났다. Anthropic은 일부 중국 AI 기업이 자사 서비스 사용자의 요청을 Claude로 전달하면서 그 결과를 모델 훈련에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Anthropic에 따르면 Moonshot AI는 일부 고객 요청을 자체 Kimi 모델 대신 Claude로 전달했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대화 일부를 저장해 모델 학습에 사용했다. DeepSeek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일부 요청이 Claude로 전달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회사는 밝혔다.

이 과정에서 기업 내부자료와 코드, 접속 자격증명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된 사례도 발견됐다고 Anthropic은 주장했다. 사용자는 자신이 선택한 AI 모델에 데이터를 입력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처리 과정에서 다른 기업의 모델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모델 증류 논쟁은 미국 AI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넘어 기업 데이터의 처리와 이동 문제로 확대된다. 기업이 생성형 AI 서비스를 도입할 때 어떤 회사의 모델을 사용하는지만 확인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요청을 처리한 모델, 데이터가 통과한 국가와 사업자, 제3자 모델로의 재전송 여부까지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Anthropic의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최고경영자도 최근 AI 기술 보호를 미·중 AI 경쟁과 연결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전략적 AI 우위를 유지하면서 독점적 기술을 보호할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 안전과 기술보호가 별개의 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AI 전략 안에서 함께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아직 제재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현재 미국 정부의 조치가 어디까지 왔는지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9월 8일 발표는 NSA·FBI·CISA의 공동 사이버보안 권고다. 중국 AI 기업 6곳에 새로운 경제제재를 부과한 조치는 아니다.

현재 확인된 범위에서는 이번 모델 증류 의혹을 근거로 6개 기업 전체가 새로 미 상무부 Entity List에 지정되거나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금융제재를 받은 것은 아니다. 모델·API·클라우드 접근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새로운 수출통제 규정도 이번 발표와 함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이번 사안을 공식적인 국가안보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중국 기업들의 접근방식을 공개하고 미국 AI 기업에 비정상적인 사용 탐지와 계정 차단, 관련 정보 공유를 권고하면서 기업 차원의 약관 집행과 정부의 국가안보 정책 사이의 경계가 좁아지고 있다.

향후 Entity List 지정이나 금융제재가 추가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API와 클라우드 접근까지 별도의 규제 대상이 될 경우 미국의 대중 AI 통제는 반도체 공급망을 넘어 AI 모델 서비스와 접속 인프라까지 포괄하게 된다.

중국은 미국의 주장을 거부했다

중국은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모델 증류가 AI 산업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주장이 중국 AI 산업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필요할 경우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양측의 주장에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부분이 있다. 모델 증류는 그 자체로 불법적인 기술이 아니다. 미국이 문제 삼는 핵심은 접근 제한을 우회하고 허가 없이 프런티어 모델의 능력을 대규모로 추출했다는 의혹이다.

따라서 향후 논쟁은 ‘증류를 허용할 것인가’보다 누가 어떤 조건에서 프런티어 모델에 접근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대규모 사용을 정상적인 API 이용으로 인정할 것인지, 제3자 중계 서비스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 신호는 실제 제재다

미국과 중국은 9월 중순 AI 안전을 다루는 첫 공식 양자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논의 대상으로는 첨단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과 AI를 이용한 사이버공격, 양국 AI 연구소 간 정보공유 등이 거론되고 있다. 모델 증류 의혹도 양국 관계의 새로운 배경으로 등장했지만 현재까지 이를 최종 공식 의제로 확정했다는 발표는 없다.

다음 신호는 미국 정부의 실제 규제 조치다. 중국 AI 기업이 미 상무부 거래제한 명단(Entity List) 추가되거나 금융제재 대상이 되는지, 미국 AI 모델·API·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OpenAI, Anthropic, Google, xAI 등 미국 AI 기업의 자체 접근통제가 강화되는지와 모델 증류 문제가 향후 미·중 공식 협상 의제로 올라오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은 GPU 수출통제로 중국이 확보할 수 있는 첨단 연산 자원을 제한해왔다. 이번에는 이미 만들어진 미국 AI 모델의 능력이 API와 클라우드, 중계망을 통해 중국 AI 개발에 활용되는 경로가 국가안보 문제로 떠올랐다.

GPU에는 수출통제라는 장벽이 있다. API에는 아직 그에 상응하는 국가 차원의 통제체계가 확립되지 않았다. 미국이 그 빈틈을 실제 규제로 막기 시작하는 순간, 미·중 AI 경쟁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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