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의 최대 수혜 업종으로 반도체가 부상하면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위상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한동안 시스템반도체와 AI 가속기에 가려졌던 메모리 반도체가 데이터센터 경쟁의 핵심 인프라로 재조명되면서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이 사상 처음 시가총액 1조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마이크론의 기업가치 급등을 단순한 개별 기업 호재가 아니라 AI 산업 성장에 따른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정책과 막대한 자본시장의 지원을 받는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협할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마이크론 주가는 급등세를 보이며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어섰다. 투자자들은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D램 수요 증가와 가격 상승 가능성에 주목하며 적극적인 매수에 나섰다.
시장의 관심은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전망에 집중되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와 초거대 언어모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서버 한 대당 탑재되는 고성능 메모리 용량도 빠르게 늘어나면서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AI 연산 성능을 결정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사실상 필수 부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메모리 업체들의 협상력도 크게 강화되고 있다. 과거처럼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이 반복되기보다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공급업체다. 메모리 가격 상승과 수요 확대가 이어질 경우 실적 개선 폭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최근 증권가에서는 양사 목표주가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며 본격적인 기업가치 재평가 국면이 시작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선두 지위를 바탕으로 AI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마이크론의 급부상은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이기도 하다. 미국 유일의 대형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인 마이크론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 전략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세제 혜택, 첨단 반도체 투자 확대 정책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고 있다.
여기에 미국 자본시장의 풍부한 유동성까지 더해지면서 대규모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 자금 조달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환경을 갖추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환경이 장기적으로 기술 개발 속도와 생산능력 확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에는 GPU뿐 아니라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메모리 성능도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마이크론의 시총 1조달러 돌파는 메모리 산업이 다시 시장의 중심으로 돌아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여전히 기술력과 생산 규모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마이크론의 추격도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지속되는 한 메모리 반도체 업황 호조 역시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메모리 3강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의 1조달러 돌파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도 긍정적인 밸류에이션 재평가 신호"라면서도 "향후 시장의 관심은 AI 메모리 경쟁력과 함께 삼성전자의 노사 안정성, HBM 시장 점유율 회복 여부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