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 | 한국전쟁과 그 글로벌 유산: 전장(戰場)에서 해외입양까지
연재 1 | 한국전쟁과 그 글로벌 유산: 전장(戰場)에서 해외입양까지
  • Korea IT Times 편집국
  • 승인 2025.10.27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시아인스티튜트 연구원 리야드 무수디의 10부작 연재 첫 글은 한국전쟁이 글로벌 정치, 의료, 사회를 어떻게 뒤바꿨는지 살펴본다. 끝나지 않은 정전 체제와 한미동맹, 전후 국제 입양 현상까지, 이 글은 ‘종전’되지 않은 전쟁이 남긴 인간적·지정학적 여파를 추적한다.

 

리야드 무수디

필진:  리야드 무수디(Riyad Moosoody) | Asia Institute 글로벌안보연구원

작은 동아시아 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 국제 지정학 체계를 전체적으로 재편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이 연재의 목적이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한국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 정치적·경제적·문화적 파장은 지금도 동북아와 아태지역, 나아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전쟁의 기원과 중요성은 오랫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전쟁에 참전한 이들이 잊힌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는 희생에 대한 평가절하라기보다 무지에 가까웠고, 오늘날 한국전쟁이 ‘성스러운 의무’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전사자 유해를 찾고,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일이다.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전력이 북한군을 곧장 제압할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미국 내 예산 삭감이 초기 대응을 무력화시키며 북진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미국이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긍정적 변화도 있었다. 특히 유엔군 측은 전쟁 부상자 치료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미 극동사령부 의무부대는 준비가 부족했으나, 미 해병대의 현장 의료·수술 체계는 부상자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했다.

경제 측면에서 미국의 지원은 일본 재건뿐 아니라 전쟁으로 극심한 빈곤에 빠진 한국의 회복을 견인했다. 1953년 당시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으나, 1950~1960년대 미국 원조는 한국 경제의 기초를 마련했다.

1995년 7월, 비즈니스위크는 “한국, 첨단기술 강국으로 도약”이라는 헤드라인을 실었다. 불과 몇십 년 만에 한국은 저가 공산품 생산국에서 첨단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삼성의 성공 신화가 그 대표적 사례다.¹

그런데도 한미 동맹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누구보다 큰 혜택을 얻은 한국 사회에서 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을까.

미국 정치권과 대중은 한국 내 반미 정서 확산을 당혹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를 배은망덕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반면 한국 내에서는 반미는 소수의 의견일 뿐이라는 주장, 또는 미국이 아닌 미국 정부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이 공존한다. 또 다른 시각은 한국이 보다 자주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성숙의 징후로 본다.

문화적 측면에서의 변화도 놀랍다. 1900년 인구의 1%에 불과했던 기독교가 오늘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는 종교가 됐다. 200년 전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대규모 이민과 국제 입양이 촉발됐다.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1953~1960년 사이 약 8,000명의 한국인이 미국에 입국했다고 추정한다.² 당시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전쟁고아들이 미국 가정에 입양될 수 있도록 단체들이 조직되기도 했다.

 

글의 순서

1. 한국전쟁과 그 글로벌 유산: 전장(戰場)에서 해외입양까지

2. 한국전쟁 이후의 입양

3. 한국 경제의 기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4. 한국전쟁이 촉발한 의학 혁신

5. 한국전쟁 기원에 대한 새로운 자료 분석

6. 한국전쟁이 냉전을 바꿨는가

7. 전쟁 이후 한반도 종교 지형 변화

8. 한국에서의 미군 개입

9. 한국과 프랑스 참전용사 이야기

10. 한국 사회에서의 반미주의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ㅡ성스러운 의무의 현재 진행형

2018년, 북한이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절차를 재개하기로 하면서 멈춰 있던 역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그해 6월, 양측은 긴장과 냉전의 유산을 넘어 인도주의적 조치를 약속했고, 6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에 그 첫 실행이 공개됐다.

이 조치는 2018년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네 번째 항목, 즉 한국전쟁 포로 및 실종자 유해 발굴과 확인된 유해의 즉각 송환 약속에서 비롯됐다. 워싱턴은 이것이 “송환 재개를 위한 중대한 발걸음”이며 “북한에 남아 있는 미귀환 미군 약 5,300명의 유해 수습 작업을 향한 실질적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해 7월 27일, 오산 공군기지에서 미군 유해로 추정되는 55구의 유해함이 북한으로부터 인도됐다. 이어 8월 1일 하와이에서 미국 측 공식 예우 속에 두 번째 봉환 행사가 치러졌다.
켈리 맥키그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국장은 “이번 송환은 앞으로 더 많은 실종 장병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가시적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73년 전쟁, 끝나지 않은 가족의 기다림

북한 내 미군 유해 공동 발굴은 2005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기 안보 우려로 중단된 바 있다. 그럼에도 미군의 ‘글로리 작전(Operation Glory)’으로 시작된 유해 송환 노력은 중단되지 않았다. 한국 역시 자체적으로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사업을 확대해왔다.

한국 정부는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해 유가족 DNA 채취를 독려하는 ‘호국의 영웅을 찾아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DPAA 공보관 리 터커는 “한국군은 미군과 함께 싸웠던 동맹군으로, 두 기관(DPAA·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긴밀한 협력과 과학기술 발전이 유해 확인 성과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유해 발굴은 DMZ를 중심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남북 합의 이후 시작된 비무장지대 발굴 작업에는 매년 약 10만 명의 장병이 투입된다. 발굴된 유해는 후방 연구소로 이송돼 DNA 비교 등 정밀 감식 절차를 거친다. 이름 없는 전사자 한 명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데 수년이 걸리며, 과학자와 유가족 모두에게는 인내를 요구하는 여정이다.

그럼에도 신원 확인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수십 년을 기다린 가족의 눈물과 환호가 뒤따른다. 4만여 명의 한국 유가족이 이미 DNA 정보를 제공했으며, 누구도 끝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귀환의 약속’이 계속되고 있다.

한·미 공동의 사명

2023년, 미 육군 찰스 R. 패튼 상병의 유해가 치과 및 인류학 분석, 흉부 X선 대조, 미토콘드리아 DNA 감식 등을 통해 최종 확인됐다. 그는 고향인 미주리주 로슨에 안장됐다. 같은 해, 한국에서도 73년 만에 국군 전사자 유해가 하와이에서 되돌아왔다. 태극기로 덮인 관은 서울공항에서 대통령과 고위 군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례를 받으며 맞이됐다.

송환된 유해에는 전쟁 당시 미군이 수습해 보관해온 경우, 1990~1994년 북한이 인도한 유해, 1996~2005년 미·북 공동 발굴 유해 등이 포함됐다. 2012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국군 전사자 유해는 총 313위, 이 가운데 19위는 신원이 확인됐다.

“전쟁은 과거지만, 기다림은 현재다”

한국전쟁은 문서상으로만 멈춰 있을 뿐 그 상처와 기억은 여전히 한반도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흙 속에서 발견되는 조각난 유품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들의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여정이다.

DPAA와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MAKRI)의 공동 임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된다. 그 목표는 단 하나다. 죽은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고, 가족에게 마침내 작별을 허락하는 것.

이것이 양국이 공유하는 성스러운 의무이며, 전쟁을 기억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저자 소개

리야드 무수디(Riyad Moosoody)는 아시아 연구소기(Asia Institute)의 글로벌 안보 연구원이다. 그의 연구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 한국 전쟁의 역사 서술, 그리고 이 분쟁이 지속해서 미치는 지정학적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리셔스 출생으로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학을, 보르도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 캠퍼스에서 미국사를 전공했다. 박사 연구를 위해 미국 연구소와 프랑스 국방부로부터 펠로우십을 수여받았으며,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영문버전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Independent journalism on technology, industry and the forces reshaping Korea and the world.
  • Korea IT Times Co., Ltd. | 34 Gukjegeumyung-ro 8-gil, Yeongdeungpo-gu, Seoul, Republic of Korea
  • Business Registration No. 206-86-32195
  • Tel. +82-2-578-0434 | 010-2442-9446 | info@koreaittimes.com
  • Publisher & Editor-in-Chief: Younsoo Chung | Youth Protection Manager: Choul-woong Yeon
  • ©2004–2026 Korea IT Times.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