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3부 |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
글 홍승권 | 법률사무소 판 대표변호사 (skh@law-pan.com)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회사와 회사를 운영하는 주체인 이사는 엄연히 별개이다. 그러므로 회사의 채무는 회사 자체에 귀속되며, 이사의 책임은 회사에 대한 내부적 책임에 그친다
그러나 이사가 직무 수행 과정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제3자에 대한 책임이 인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법인과 개인 사이의 거래이지만, 법인을 운영하는 이사가 사실상 거래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다. 임차인 갑이 임대인 주식회사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거액의 보증금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해당 부동산에는 반드시 고지해야 하는 어떤 문제가 있었다. 회사를 대표하여 대표이사가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 갑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 결과 갑은 임대차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보증금 반환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위 사안에서 법원은 대표이사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위와 같은 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고, 회사와 연대하여 갑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사의 위와 같은 책임은 단순한 경영상 판단의 실패나 회사의 채무불이행만으로는 인정되지 않으며, 직무수행 과정에서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요구된다. 그러나 위 사안처럼, 거래의 기초가 되는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를 확인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자체로 중대한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
추가로 설명하자면, 등기부에 대표이사로 등기된 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면 사실상의 이사로서 형식적인 지위와 무관하게 이사로서의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작은 회사들은 명의상 대표자와 실질적 운영자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사람에게 형식적인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면 거래 안전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형상 대표자로 행세하며 거래에 관여한 자에 대하여 실질을 기준으로 책임을 부과한다면 이러한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서 법인과 계약을 체결한다면, 당연히 계약서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거기에 더하여 거래 상대방으로 나온 사람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한 대화를 녹음하거나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나눈 대화를 삭제하지 말고 보관해 두자. 이것들이 향후 손해 발생 시 상대방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
만약 회사의 대표자 또는 실질적 운영자의 입장이라면, 자신이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자신이 형식상 대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특히 거래의 전제가 되는 중요한 법적 요건을 확인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중대한 과실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잊지 말자.
필자 소개
홍승권은 법률사무소 판의 대표변호사다. 민·형사 소송을 포함해 디지털 시대에 부상하는 새로운 법적 과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는 기술 혁신, 재산권 질서, 규제 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