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가상자산 거래소 시스템 오류로 ‘실제 잔고 없이 비트코인 62만 개가 생성’되는 사건이 발생한 뒤, 국내 크립토 산업의 신뢰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단순 장애로 치부할지, 금융 인프라로서의 자격을 묻는 계기로 볼지 평가가 갈리지만, 쟁점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준’에 가깝다. 금융이 되겠다는 산업이 감당해야 할 통제 수준이 어디까지인가가 본질로 떠올랐다.
국민대학교 김형중 교수(한국핀테크학회장)는 이번 사안을 “해프닝이 아니라 금융의 정확함을 시험받은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는 “금융의 최대 적은 안이함”이라며, “이 정도면 괜찮다”는 판단이 누적되는 순간 시스템은 결국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교수는 사고가 발생한 해당 거래소의 사례를 두고 “통제 실패이며, 그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금융은 왜 내부통제에 집착하는가. 금융은 신뢰 산업이고, 신뢰는 ‘혁신’이 아니라 ‘엄격한 통제, 감사 가능성, 재현 가능한 절차’에서 나온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가리는 수준을 넘어, 애초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차단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금융의 전제다.
김 교수가 인용한 해외 사례는 이 기준이 얼마나 냉정한지 보여준다. 2010년대 이후 미국 금융당국은 AML(자금세탁방지)·제재 준수와 관련해 내부통제의 설계와 운용을 강하게 압박해 왔고, 일부 은행들은 ‘고의’ 여부와 무관하게 통제 미흡만으로도 대규모 제재와 합의를 감수했다. 핵심은 범죄가 있었느냐가 아니라, 금융기관이 약속한 통제 수준을 실제로 구현했느냐였다.
이 지점에서 크립토 산업의 과제가 명백해진다.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금융’의 언어를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장은 이들을 기술 기업이 아닌 면허 산업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시스템 미비는 “기술 사고”가 아니라 “신뢰 계약의 위반”으로 해석되고, 사고의 원인보다 ‘사고가 가능했던 구조’가 더 큰 책임의 근거가 된다.
두 번째 기준은 안정성이다. 금융기관은 평시가 아니라 위기에서 평가받고, 고객은 혁신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작동’에서 안전을 느낀다. 거래량 급증, 급락·급등, 외부 충격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주문 체계가 흔들린다면, 그 기관은 아직 금융 인프라로 인정받기 어렵다.
김 교수는 과거 시장 변동 국면에서 나타난 거래 지연·서버 장애 사례를 거론하며 “위기 상황에서도 작동하는가가 금융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원인이 트래픽 폭주든 내부 대응 미숙이든, 금융기관의 기준 앞에서는 결과가 변명으로 상쇄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크립토가 ‘거래 플랫폼’에서 ‘시장 인프라’로 이동하려면, 바로 이 구간에서 시험대에 오른다.
이번 사건을 해당 거래소의 ‘성장통’으로만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상장(IPO)과 제도권 편입, 글로벌 확장을 말하는 순간, 성장통은 면책 사유가 아니라 ‘검증 단계’가 된다. 김 교수는 “상장사가 되려면 내년 감사보고서에 재발 방지 체계를 별도로 기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사고 이후의 통제 설계가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봤다.
결국 논쟁의 초점은 ‘혁신 vs 규제’가 아니다. 혁신은 선택이지만, 신뢰는 의무이며, 그 의무는 내부 통제와 안정성으로만 증명된다. 크립토가 금융이 되려면 기술 경쟁력보다 먼저, 통제에 대한 집요함을 조직의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지, 산업의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지는 이후의 대응이 결정한다. 다만 이번 국면에서 시장이 남긴 과제는 분명하다. 더 빠른 혁신이 아니라, 금융이 요구하는 정확성과 ‘멈추지 않는 작동’을 끝까지 구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