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순서
1. AI 지능 확장 시대, 종교는 어떻게 바뀌는가
2.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본질
3. AI는 종교를 재정의 할 수있는가
4. 전통 종교의 공통분모와 미래 신앙의 방향
5. AI 시대, 인간의 소망과 윤리는 어떻게 다시 세워지는가
6. AGI 시대, 인간 실존과 존재의 가치는 어디에 놓이는가
글 임병민(IBM) 칼럼니스트
인공지능은 종교에 대해 설명하고 평가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종교적 체험을 할 수는 없다. 종교는 단순한 지식 체계가 아니라 두려움, 고통, 소망, 죄의식, 감사, 경외심 같은 인간의 내면 경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AGI를 넘어 ASI 시대가 온다고 해도 AI가 인간처럼 오감과 감정, 죽음에 대한 불안, 구원에 대한 갈망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인간은 종교를 무엇으로 이해해 왔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AI의 답변은 스스로의 신앙 고백이 아니라 인간이 축적해 온 종교적 언어, 역사, 신학, 철학, 윤리의 데이터를 재구성한 결과다. AI는 종교를 설명할 수 있지만, 기도할 수는 없다. 교리를 비교할 수 있지만, 믿음의 고통과 위안을 자기 삶으로 감당할 수는 없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식이었다. 선사 시대의 매장 풍습, 자연의 영혼을 믿는 애니미즘, 집단을 상징하는 토테미즘은 모두 인간이 죽음과 자연, 고통과 불확실성 앞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던 흔적이다. 인간은 지식을 얻기 전에도 두려움을 느꼈고, 과학을 갖기 전에도 죽음을 마주했다. 종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에게 질서와 위안, 공동체의 규범을 제공했다.
필자의 어머니가 보여 준 신앙의 변화도 이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어머니는 한때 맑은 물을 떠 놓고 간절히 기도했고, 이후에는 불교 사원에서 경전을 읽으며 기도했으며, 가족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는 단순히 종교를 바꾼 일이 아니라, 삶의 환경과 가족관계, 개인적 경험이 신앙의 형태를 바꾸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종교를 교리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삶의 고비, 가족의 변화, 사회적 환경, 마음의 필요가 신앙의 방향을 움직인다.
이 점에서 종교는 인간의 약함과도 깊이 연결된다. 인간은 슬픔과 고통, 불안과 상실을 경험한다. 흥미로운 것은 동물에게도 슬픔과 애착의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다. 코끼리가 죽은 동료 곁에서 머리를 숙이고 오래 머무는 모습은 생명체가 안정과 평화를 바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은 그 슬픔을 단순한 감정으로 끝내지 않고 의미로 해석하려 한다. “왜 고통이 있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종교는 이 질문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응답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이슬람의 순종, 유교의 도덕적 수양은 표현은 다르지만 인간이 자기 안의 욕망과 혼란을 정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진다. 종교는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절대자를 설명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주기도문 안에 인간 신앙의 핵심 구조가 압축되어 있다는 해석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동시에,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묻는다.
AI 시대에 종교의 의미는 여기서 다시 중요해진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분석할 수 있지만, 스스로 선악의 무게를 느끼지는 못한다. AI가 오류를 줄이기 위해 자기 점검과 검증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논의는 기술 문제이면서 동시에 윤리 문제다. 인간이 종교를 통해 자신의 욕망과 행동을 성찰해 왔다면, AI 시대에는 기술 역시 자기 오류와 위험을 점검하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결국 AI가 종교를 다시 정의한다는 것은 AI가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AI는 인간에게 종교의 본질을 다시 묻게 만든다. 종교란 지식의 체계인가, 윤리의 기준인가, 마음의 위안인가, 아니면 인간이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방식인가. AI는 이 질문에 답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 답을 삶으로 살아낼 수는 없다.
AI 시대에도 종교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이 있다. 인간은 죽음을 알고, 고통을 느끼며, 잘못을 후회하고, 더 나은 삶을 소망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이 실존의 무게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AI 시대의 종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분명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인간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위해 자신을 정화하며 살아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