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생산기반 강화로 미국 조선업 재건 정조준 계획
한화오션이 미국 현지에서 함정 설계부터 조선 인력 양성, 공급망 구축까지 아우르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며 한·미 조선산업 동맹 강화에 속도를 낸다. 미국 조선업 재건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현지 생산 기반을 확대해 향후 미 해군 함정 사업과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화오션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조선협력센터 개소식’을 계기로 미국 주요 기관 및 기업과 함정 설계·개발, 조선 인력 교육,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력에 나섰다.
먼저 한화오션은 미국의 대표적인 함정 설계·엔지니어링 기업인 레이도스 깁스 앤 콕스(Leidos Gibbs & Cox)와 글로벌 전략 수송함(Global Fast Sealift) 공동 설계를 위한 전문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4월 양사가 체결한 미국 및 동맹국 해군 함정 건조 역량 강화를 위한 MOU를 실제 설계 사업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양사는 이번 계약을 통해 글로벌 전략 수송함의 공동 설계에 착수한다. 설계 과정에서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품질 보증 체계를 구축하는 등 협업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한화오션의 선박 및 함정 건조 역량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해군 수상함의 70% 이상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레이도스 깁스 앤 콕스의 설계·엔지니어링 기술을 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사의 협력이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설계 기술과 한국의 건조 경쟁력이 결합될 경우 미국 조선업의 생산성 제고와 함정 건조 기간 단축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전략 수송함은 이번 협력의 핵심 플랫폼으로 꼽힌다. 평상시에는 상업적 물류 운송에 활용하고 유사시에는 군용 물자와 장비를 신속하게 수송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이중용도(Dual-Use) 선박이다. 상업성과 군사적 활용성을 동시에 갖춘 만큼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물류·국방 수요를 함께 겨냥할 수 있다는 것이 한화오션의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이중용도 선박이 미국 조선산업 재건 과정에서 중요한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군함과 상선의 건조 역량을 연계해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고, 평시에는 민간 수요를 통해 생산 기반을 유지하면서 유사시에는 군수 지원 역량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은 함정 설계뿐 아니라 미국 조선업의 고질적인 숙제로 꼽히는 숙련 인력 부족 문제에도 대응한다. 한화필리조선소와 델라웨어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Delaware County Community College)는 조선 기술 교육 및 인력 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양측은 미국 내 조선업 인력 확보를 위해 강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술 교육 체계를 고도화할 예정이다. 델라웨어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는 한화필리조선소의 견습 프로그램에 연계 기술 교육 기관으로 참여해 현장 인력에게 직무 관련 이론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미국 내 조선업 인력 기반을 장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투자로 해석된다. 미국 조선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조선소 시설 확충뿐 아니라 용접·배관·전장 등 숙련 기술인력 확보가 필수적인 만큼, 한국 조선업의 현장 교육 노하우를 현지 인력 양성에 접목할 경우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급망 구축에도 나선다. 한화오션은 한화필리조선소를 중심으로 필라델피아 상공회의소(Greater Philadelphia Chamber of Commerce), 필라델피아 성장 파트너십(Greater Philadelphia Growth Partnership)과 조선산업 공급망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현지 기업과 협력해 조선 기자재 및 부품 공급망을 발굴하고 지역 내 조선산업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한화필리조선소의 생산 역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공급망 현지화가 본격화될 경우 미국 내 조달 비중을 높이고 물류비와 공급 차질 위험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한화오션의 미국 시장 진출 전략을 ‘조선소 확보’에서 ‘현지 조선 생태계 구축’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내 설계 기업과 공동으로 기술 역량을 확보하고, 현지 교육기관과 인력을 양성하며, 지역 기업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미국 조선업 전반에 걸친 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이 해군력 증강과 조선업 경쟁력 회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오션의 현지화 전략은 향후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과 신규 함정 건조 사업 확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내 생산과 인력, 공급망 기반을 갖추면 현지 조달 요건과 사업 참여 조건에 대응하는 데도 유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미 조선 협력의 외연이 확대될 경우 양국 산업 모두에 시너지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한국의 선박 건조 기술과 생산 효율성을 활용해 조선업 재건 속도를 높일 수 있고, 한국 조선업체들은 미국 내 생산 거점을 기반으로 현지 시장과 방산 수요에 보다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협력은 한화오션이 추진 중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의 실행력을 높이는 기반으로도 평가된다. 단순히 선박을 공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미국 현지에서 설계와 생산, 인력,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는 모델을 통해 미국 조선산업의 자립 기반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다만 미국 내 조선산업 생태계를 단기간에 복원하기 위해서는 숙련 인력 확보와 기자재 공급망 구축, 생산성 향상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한화오션이 현지 파트너들과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실제 생산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끌어올리느냐가 향후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인섭 한화오션 경영지원실장은 “한화오션은 미국 조선산업의 재건과 한국 조선업의 발전에 기여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며 “현지 생산 기반을 중심으로 미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마스가 프로젝트’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