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순서
1부 | 법인과의 거래에서 돈을 받지 못한 경우
2부 | 상호 속용과 양수인의 책임
3부 |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 책임
4부 | 회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람
5부 | 폭행을 당했을 경우 유의할 점
6부 | 형사합의금, 얼마가 적당한가
글 홍승권 | 법률사무소 판 대표변호사 (skh@law-pan.com)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합의란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일정한 돈을 받고,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돈을 형사합의금이라 한다.
합의는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합의 여부가 검사의 기소 결정이나 법원의 형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건으로 입은 손해를 전부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려면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형사절차 안에서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된다.
그런데 합의금의 적정선을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근본적인 이유는 피해자가 입은 고통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폭행이나 성범죄, 교통사고처럼 신체나 정신에 상처를 입힌 사건에서, 그 아픔이 얼마짜리인지를 계산하는 기준은 없다. 병원 치료비야 당연히 환산이 가능하지만, 피해자의 정신에 남은 고통은 병원 치료 정도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피해자로서는 자신이 당한 일을 돈으로 따지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일정한 금액을 받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용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 측은 합의금을 높게 부르는 경향이 있고, 가해자 측은 이를 과도하다며 맞서는 일이 반복된다.
필자는 피해자 대리인으로도, 피의자 대리인으로도 형사사건을 맡아 왔다. 양쪽을 모두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합의금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교통사고나 폭행 같은 범죄의 경우에는 수월하게 합의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서로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를 수없이 보아 왔다.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해자는 재판을 거쳐 자신의 범죄에 상응하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징역형 등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만약 합의가 된다면 가해자는 합의가 되지 않았을 때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다.
심각한 범죄가 아닐 경우 벌금형이 많이 선고되는데, 합의금을 낸 만큼 그에 상응하여 법원이 부과하는 벌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합의는 형사처벌의 양형에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될 뿐, 벌금액에서 직접 공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가해자 입장에서는 합의를 하는 것이, 합의를 하지 않고 벌금을 납부하는 것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합의금이 지나치게 높으면 가해자로서는 합의를 하지 않고 좀 더 많은 벌금을 내는 것을 선택하거나, 아예 집행유예나 징역형을 받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물론 합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의 선택이고, 그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합의를 하지 않고 가해자를 좀 더 엄벌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경우도 많다. 다만, 합의금을 통해 피해 보상을 원하는 피해자라면 위와 같은 사항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합의금을 높게 책정하다가 끝내 합의가 결렬되면, 또다시 다른 절차를 거쳐 보상을 청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시간과 감정을 다시 소모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형사합의금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감정적 판단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합의가 결렬되었을 때 각자에게 어떤 결과가 남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 합리적인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홍승권은 법률사무소 판의 대표변호사다. 민·형사 소송을 포함해 디지털 시대에 부상하는 새로운 법적 과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는 기술 혁신, 재산권 질서, 규제 정책의 변화가 법과 시장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