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장기 성장에 대비해 대규모 생산 인프라 확충에 나선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생산기지에 총 54조원 규모의 신규 팹(Fab)을 구축하며 차세대 메모리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낸다.
SK하이닉스는 7일 이사회를 열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내 ‘Y2’ 팹과 청주 ‘M17’ 팹 건설을 위해 각각 35조2000억원, 19조1000억원 등 총 54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는 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과거 메모리가 단순 데이터 저장 부품으로 인식됐다면, 최근에는 AI 연산 성능과 서비스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Omdia)는 D램과 낸드 시장이 지난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9%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반도체 사이클이 아닌 AI 산업 성장에 기반한 구조적 수요 증가라고 보고 선제적인 생산 능력 확보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HBM 주도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AI 메모리 시장 전반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성능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생산 역량 자체가 반도체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두 번째 생산라인이 될 Y2 팹은 차세대 D램 생산 중심지로 조성된다. 연면적 약 34만1000평 규모로 건설되며, HBM을 포함한 고부가 메모리 생산 능력 확대에 활용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7월 착공해 2029년 6월 첫 클린룸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첫 번째 팹(Y1)과 연계해 용인 클러스터를 글로벌 AI 메모리 생산 핵심 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당초 2045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성할 예정이었던 용인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앞당겨 2033년까지 4개 팹 구축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Y2 투자는 이 같은 생산 확대 전략의 핵심 단계로 꼽힌다.
청주 M17 팹은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낸드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 거점이다. 최근 AI 서비스 확대와 함께 기업용 SSD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AI 추론 과정에서 활용되는 KV 캐시 저장 수요까지 증가하면서 고성능 낸드 제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M17은 기존 청주캠퍼스의 M11·M12·M15 생산라인과 연계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미 확보된 부지와 전력·용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신규 생산시설 구축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청주 M17은 연면적 약 20만6000평 규모로 조성되며, 내년 2월 착공해 2028년 12월 첫 클린룸 개방을 목표로 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투자를 단순한 생산량 확대가 아니라 고객 수요에 맞춘 유연한 공급 체계 구축으로 설명했다. 팹 건설은 계획대로 진행하되 실제 장비 투입과 생산능력 확대는 시장 상황과 고객 요구에 맞춰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최근 AI 반도체 경쟁이 기술 개발을 넘어 공급망 확보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투자의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HBM 같은 첨단 제품은 높은 기술력뿐 아니라 안정적인 생산 능력과 고객 대응 속도가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규모 투자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팹 건설 과정에서 소재·부품·장비 기업과의 협력이 확대되고, 지역 고용 창출과 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얼마나 빠르게 고객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 기반을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며 “SK하이닉스의 이번 투자는 HBM 중심의 성장 전략을 넘어 AI 메모리 공급망 전반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AI 시대 성장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선제적 결정”이라며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 안정에 기여하는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생산 기반과 기술 경쟁력을 지속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