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가 데이터의 저장 한계를 확장했다면, AI 에이전트의 확산은 필요한 데이터에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새로운 경쟁 기준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스페이스 컴퓨터(Space Computer, Inc.)가 인간과 AI 에이전트를 위한 분산 파일 시스템 개발을 내세워 240만 달러 규모의 프리시드 투자를 유치한 배경이다.
스페이스 컴퓨터는 8월 18일 자사가 운영하는 스페이스(Space)의 투자 라운드를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투자는 a16z 스피드런(a16z Speedrun)이 주도했으며 골든벤처스(Golden Ventures), 노스사이드벤처스(Northside Ventures)와 소비자·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 경력을 가진 12명의 엔젤투자자가 참여했다.
이번 투자의 의미는 또 하나의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가 등장했다는 데 있지 않다. 스페이스가 겨냥하는 영역은 데이터를 보관하는 저장소가 아니라, 클라우드에 분산된 데이터를 사람과 애플리케이션, AI 에이전트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접근 계층이다.
스페이스는 클라우드 스토리지와 로컬 드라이브를 하나의 공유 데이터 환경으로 통합하는 AI 네이티브 분산 파일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과 팀 구성원, AI 에이전트가 전체 파일을 내려받거나 복사본을 만들지 않고도 동일한 실시간 데이터를 로컬 파일처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클라우드가 저장을 해결하자 AI가 접근 문제를 드러냈다
설계 파일과 소프트웨어 저장소, 영상, 데이터세트, 기계 생성 결과물은 여러 클라우드와 기기에 흩어져 있다. 데이터가 클라우드에 존재하더라도 실제 작업에 사용하려면 내려받기와 동기화, 복제 또는 별도의 색인·수집 과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 이는 대기시간과 작업 중단을 의미한다. AI 에이전트도 조직의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파일을 별도 도구에 업로드하거나 검색 가능한 형태로 변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가 중복 저장되고 최신 버전과 접근 권한을 관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스페이스는 문제의 원인을 저장공간 부족보다 데이터의 위치와 실제 작업 환경 사이의 단절에서 찾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운영체제 바로 위에서 작동하는 파일 접근 계층을 구축하고 있다.
클라우드 파일은 파인더(Finder)와 같은 기존 파일 탐색기에 표시되며, 사용자는 이를 기기에 영구 저장하지 않고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에서 열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이나 AI 에이전트가 파일을 요청하면 전체 파일이 아니라 작업에 필요한 데이터 구간만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이를 적용하면 영상 편집자는 로컬 저장공간보다 큰 프로젝트를 열고, 건축가는 대규모 설계 모델에서 필요한 자산만 불러올 수 있다. AI 에이전트 역시 조직의 전체 데이터세트를 복제하지 않고 특정 작업과 관련된 파일의 일부만 읽을 수 있다.
제이슨 자오(Jason Zhao) 스페이스 공동창업자는 “인간과 에이전트가 다루는 데이터는 이미 로컬 디스크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다”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파일이 복제되거나 수집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클라우드 스토리지가 주로 파일 동기화와 웹 애플리케이션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스페이스는 파일시스템 계층에서 원격 데이터를 로컬 파일처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어도비 프리미어, 다빈치 리졸브, 블렌더, 컴퓨터지원설계(CAD) 프로그램, 코드 편집기와 AI 에이전트가 도구별 전용 연동 없이 동일한 데이터 계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접근은 한 페이지나 특정 영상 프레임만 필요한 작업에도 전체 파일을 업로드해야 하는 AI 도구의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에이전트가 필요한 데이터 구간만 읽으면 전송량과 처리비용은 물론 불필요한 정보 노출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기업용 인프라로 자리 잡으려면 안정적인 응답 속도와 캐싱, 동시 편집, 버전관리, 장애 복구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사용자와 에이전트별 접근 권한을 세분화하고 데이터 이용 기록을 추적하는 보안·거버넌스 체계도 필요하다. 스페이스의 경쟁력은 ‘무제한 저장공간’이라는 개념보다 이러한 조건을 얼마나 신뢰성 있게 구현하는지에 달려 있다.
개인적 불편에서 발견한 데이터의 구조적 병목
스페이스는 매슈 아오(Matthew Ao), 아리한트 밥나(Arihant Bapna), 제이슨 자오가 창작 활동과 기업 운영 과정에서 겪은 대용량 파일 관리 문제에서 출발했다.
자오는 지난 10년간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며 수십 테라바이트의 파일을 축적했다. 세 창업자가 이전에 운영한 회사에서도 매월 수 테라바이트의 영상을 이동해야 했고, 업로드와 다운로드에 따른 업무 지연과 압축에 따른 품질 저하가 발생했다. 물리적 드라이브가 없으면 작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다.
창업팀은 2025년 11월 스페이스의 첫 번째 시제품을 개발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창업가 커뮤니티 파운더스(Founders Inc.)에서 제품을 고도화하며 프리시드 투자 유치를 추진했다.
조너선 라이(Jonathan Lai) a16z 제너럴파트너는 “스페이스는 파일을 사용하려면 먼저 그 파일이 기기에 존재해야 한다는 컴퓨팅의 가장 오래된 전제 가운데 하나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 창작자와 AI 에이전트가 필요한 데이터에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도록 하는 점을 기술적 차별성으로 평가했다.
스페이스는 현재 약 100명의 개인 사용자와 팀을 대상으로 비공개 베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확보한 이용자 기반이 8만 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초기 관심을 기업의 유료 도입과 지속적인 사용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가 다음 과제다.
파일시스템에서 ‘무한 컴퓨터’로
스페이스는 우선 영상 제작, 마케팅, 건축·엔지니어링·건설(AEC) 분야를 공략할 계획이다. 이들 산업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로컬 기기의 저장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고, 인간과 AI 에이전트가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를 함께 처리하는 업무 방식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이후 미디어·엔터테인먼트, AI 학습 데이터 인프라, 컴퓨터 비전, 기업 데이터 시스템과 월드모델 개발 등 데이터 집약적 분야로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파일 시스템은 회사가 ‘스페이스 컴퓨터(Space Computer)’ 또는 ‘무한 컴퓨터’라고 부르는 장기 구상의 출발점이다. 물리적 기기를 자체 저장·연산 성능에 종속된 장비가 아니라 사실상 제한 없이 확장되는 클라우드 저장 공간과 컴퓨팅 자원에 접근하는 창구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스페이스의 시도는 AI 인프라 경쟁이 GPU와 데이터센터 같은 연산 자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AI 에이전트가 실제 업무에 투입될수록 중요한 것은 더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는 일이 아니라, 권한이 허용된 데이터를 필요한 순간에 정확한 범위만큼 제공하는 능력이다. 스페이스가 재구축하려는 파일 시스템의 전략적 의미도 인간과 AI가 동일한 데이터 위에서 협업할 수 있는 기반 계층을 만드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