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원자력 발전 도입을 추진 중인 필리핀에서 현지 주요 전력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잇달아 구축하며 동남아 원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술 협력은 물론 금융과 공급망까지 연계하는 전략을 통해 향후 필리핀 신규 원전 사업 참여 기반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 7월 31일 경북 경주 본사에서 필리핀 민간 전력기업인 아보이티즈 파워(Aboitiz Power Corporation)와 원자력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양사는 ▲원자력 기술 및 정책 정보 교류 ▲신규 원전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협력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세미나 개최 ▲실무 협의체 운영 등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협력은 필리핀이 원자력 발전 도입을 본격 검토하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필리핀 정부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원전을 새로운 기저전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간 전력기업과 함께 원전 후보 부지 조사와 제도 정비, 인력 양성 등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아보이티즈 파워는 필리핀을 대표하는 민간 전력기업 가운데 하나로, 화력과 수력은 물론 태양광·지열 등 다양한 발전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송배전과 전력 판매 사업까지 수행하는 종합 에너지 기업이다. 향후 필리핀 원전 사업에서도 핵심 민간 사업자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게 거론된다.
한수원은 이번 협약 이전에도 필리핀 시장 진출 기반을 꾸준히 넓혀왔다. 지난 3월에는 한국수출입은행과 필리핀 최대 배전기업인 메랄코(Meralco)와 원전 사업 협력을 위한 3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당시 협약은 한수원이 원전 기술과 사업 개발 경험을 제공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이 금융 지원을 검토해 필리핀 원전 산업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한수원은 기술, 금융, 현지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면서 필리핀 원전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리핀은 1980년대 건설된 바탄 원자력발전소(Bataan Nuclear Power Plant)를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상업 운전하지 못한 이후 오랜 기간 원전을 보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경제 성장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 확대, 탄소중립 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원전 도입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오는 2032년 첫 원전 가동을 목표로 관련 법·제도 정비와 입지 검토, 국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원자력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 프랑스, 캐나다 등 원전 기술 보유국들과도 협력을 추진하며 다양한 노형과 사업 모델을 검토 중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의 성공적인 건설과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필리핀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수원은 원전 건설부터 운영, 정비, 인력 양성까지 전 주기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원전 도입 초기 단계인 국가들과의 협력에서 강점을 갖는다는 평가다.
최근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는 탄소중립과 전력 수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원전 도입을 검토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한국 기업들의 해외 수주 기회도 확대되고 있다. 필리핀 역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신규 원전 시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카를로스 라몬 아보이티즈 기업지원총괄책임자는 "이번 협약은 원자력이 필리핀의 에너지 안보와 안정적인 기저전원 확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함께 모색하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며 "양사가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일경 한수원 사업총괄본부장은 "한수원이 국내외 원전 건설과 운영을 통해 축적한 기술력과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아보이티즈 파워와 긴밀히 협력해 필리핀의 에너지 전환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 기반 마련에 기여하겠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지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