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갈수록 지능화하는 보이스피싱과 투자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탐지 시스템과 수사 전문인력을 결합한 금융사기 예방체계를 강화한다. 범죄 발생 이후 피해금을 환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의심 거래를 사전에 포착하고 금융소비자의 자산을 보호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은 12일 서울 중구 본점에서 금융사기예방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금융사기 동향과 주요 피해 예방 성과, 향후 대응 계획을 공개했다. 생성형 AI와 통신정보를 활용한 차세대 예방체계를 구축하고 금융회사와 수사기관 간 정보 공유도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기 피해액은 2022년 7911억원에서 2025년 2조3755억원으로 3년 만에 약 3배 증가했다. 범죄 수법이 고도화하고 조직의 활동 범위가 해외로 확대되면서 기존 대응 방식만으로는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과거에는 범죄조직이 전화 등을 이용해 직접 피해자를 속이는 방식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기술 개발과 피해자 유인, 자금 이체 및 세탁 과정이 분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생성형 AI를 범죄에 접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범죄 거점 역시 중국과 대만을 비롯해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여러 국가로 분산되는 추세다.
특히 금융사기범들은 피해자와 친분을 쌓은 뒤 투자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범행 수법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유형인 ‘피그부처링(Pig Butchering)’은 SNS나 메신저를 통해 접근해 신뢰를 형성한 뒤 가짜 투자 플랫폼이나 투자 리딩방으로 유인하는 사기다. 초기에는 소액 투자로 수익을 얻는 것처럼 보여준 뒤 투자 규모를 키우도록 유도하고, 최종적으로 출금을 막아 자금을 편취한다.
연인이나 지인을 가장해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한 뒤 투자를 권유하는 로맨스 스캠도 같은 유형의 범죄로 꼽힌다. 피해자가 이미 금융사기를 당한 뒤에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 ‘리커버리 스캠’은 수사기관이나 피해금 환급 전문가를 사칭해 돈을 되찾아 주겠다고 접근한 뒤 수수료와 세금, 보증금 등을 요구하는 2차 사기다.
우리은행은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조직과 전문인력,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을 중심으로 예방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개별 직원의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 데이터 분석과 범죄 유형별 대응 지침, 외부기관과의 공조를 결합해 조직 차원의 대응 역량을 높이는 방식이다.
금융사기 대응 전문성 강화를 위해 경찰 출신 인력도 영입했다. 금융사기예방부의 전재홍 총괄수석은 경찰에서 24년간 근무하고 총경으로 퇴직한 수사 전문가다. 보이스피싱 조직인 이른바 ‘김미영 팀장’ 조직의 주요 운영진 검거와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 수사 등을 이끌었다. 우리은행은 전 수석의 수사 경험을 금융거래 분석 및 영업 현장 대응에 접목해 범죄 수법 분석부터 고위험 거래 조치까지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경찰 등 외부기관과의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강북경찰서와 안양만안경찰서 등 수사기관과 금융사기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대학과 교육기관, 공공·유관기관 및 복지기관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11개 기관에서 총 16차례 교육을 실시해 실제 피해 사례와 최신 범죄 수법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핵심 시스템인 FDS는 계좌이체와 입출금, 카드결제, 해외송금 등 금융거래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평소 거래 패턴과 다른 이상징후를 찾아낸다. 의심 거래가 포착되면 고객에게 직접 연락해 거래 여부와 목적을 확인하고, 위험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거래를 지연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예방한다.
자금세탁방지(AML) 부서와의 연계도 강화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FDS에서 자금세탁 등이 의심되는 정보 639건을 AML 부서에 전달했으며, 추가 분석을 거쳐 이 가운데 83건을 의심거래보고(STR)했다. 같은 기간 AML 분석 과정에서 확인한 다른 은행의 의심계좌 664건은 AI 기반 보이스피싱 정보공유·분석 플랫폼인 ASAP를 통해 금융권에 공유했다. 의심계좌 정보를 해당 금융회사에서도 모니터링과 피해 예방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 금융사기 예방 사례에서도 거래 분석과 담당자의 판단, 금융회사 간 공조가 효과를 거뒀다. 한 사례에서는 고객 계좌에 2억9000만원이 입금된 뒤 3000만원이 의심 계좌로 재이체되는 흐름을 포착했다. 관련자들의 진술과 관계를 교차 확인해 설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고, 계좌에 임시 조치를 적용해 2억6000만원의 피해를 예방했다.
다른 사례에서는 가족 계좌에서 받은 1억2000만원을 다른 은행으로 송금한 데 이어 고객이 본인 증권계좌의 자금 8000만원까지 추가로 보내려는 과정에서 이상 거래가 탐지됐다. 우리은행은 해당 금융회사와 정보를 공유해 수취계좌가 투자사기 신고 계좌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지급정지와 신고 절차를 통해 추가 피해를 막았다.
대출금을 노린 사기 역시 차단했다. 고객이 대출받은 1억8000만원을 금거래소 계좌로 이체하려는 과정에서 이상징후가 포착됐으며, 상담 과정에서 검찰을 사칭한 범죄자의 지시에 따른 거래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거래를 중단시키고 신고 절차를 연계해 추가 피해를 예방했다.
금융사기 예방에서 송금 전 탐지가 중요한 이유는 피해금의 회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조직은 송금받은 돈을 여러 대포통장으로 분산하거나 가상자산으로 전환하고 해외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추적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은행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6년 1분기까지 보이스피싱 피해환급률은 약 22% 수준이다. 사후 구제만으로는 피해를 복구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의심 거래를 조기에 찾아내는 체계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우리은행은 앞으로 생성형 AI와 통신정보를 활용해 금융사기 탐지 능력을 높이고, 금융거래 정보와 범죄 패턴을 결합한 분석체계를 발전시킬 계획이다. 전문인력과 대응조직을 기반으로 탐지·분석 업무를 표준화하고, 금융회사 및 수사기관 간 정보 공유와 신고 연계를 확대해 예방 효과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장기적으로는 금융사기 대응 역량을 은행 전반에 정착시키고 금융권 공동 대응과 지역사회 예방 활동으로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금융소비자가 범죄 수법을 인지하고 위험 거래를 피할 수 있도록 교육과 안내도 지속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