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차 수출 줄이는 유럽, 희토류는 중국에 의존한다
중국차 수출 줄이는 유럽, 희토류는 중국에 의존한다
  • 정연수
  • 승인 2026.10.1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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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중국, 하이브리드차 수출 축소와 희토류 공급 절차 완화에 잠정 합의

유럽의 산업 보호와 핵심 원자재 의존, 한국 자동차·배터리 산업에도 새로운 변수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오른쪽)과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8일 베이징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양측은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유럽 수출 축소와 희토류 공급 안정화 방안을 협의했다. / 사진 © European Union, 2026, CC BY 4.0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자동차의 유입을 줄이기 위해 중국과 협상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절차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려면 중국산 차량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억제해야 하지만,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핵심 원자재는 여전히 중국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경쟁 상대인 중국이 생산 공급망에서는 필수적인 협력 상대라는 점이 유럽 산업정책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9일 로이터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EU와 중국은 베이징에서 이틀간 진행한 통상협상 끝에 중국산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유럽 수출을 축소하고, 중국의 희토류와 영구자석 수출 허가 절차를 원활하게 하는 데 잠정적으로 뜻을 모았다. EU는 중국 시장에서 유럽산 자동차 부품과 올리브유, 신발 등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협의했다. 다만 수출 제한의 구체적인 이행 방식과 법적 구속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EU 회원국 지도자들의 추가 논의가 예정돼 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Maroš Šefčovič)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협상 직후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의 대EU 수출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결과에 대해 “중요한 첫걸음이지만, 어디까지나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자동차 수출 문제는 물론 양측의 무역 불균형과 시장 접근성, 핵심 광물 공급 문제를 계속 협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차 수입 급증, 유럽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압박

EU가 중국산 자동차 수출 축소를 요구한 배경에는 유럽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있다. 중국 기업들은 생산 규모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 시장에서 판매를 확대해 왔다.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미국의 관세 압력과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동시에 직면하면서 생산시설과 고용을 조정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1년간 EU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수입은 86% 증가했으며, 수입가격은 약 20% 하락했다. 해당 차량 수입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어섰다. 이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리는 동시에 가격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EU는 이미 2024년 중국산 순수전기차에 대해 보조금 조사에 따른 추가 관세를 도입했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의 유럽 진출은 순수전기차에 한정되지 않았다.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수출 구성이 확대되면서 유럽의 기존 무역 방어 조치만으로는 시장 경쟁을 관리하기 어려워졌다.

이번 협상에서 EU가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수출 축소를 요구한 것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려는 조치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향후 4년 동안 중국산 차량 수백만 대의 유럽 유입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협상 결과에 따른 예상 효과이며, 실제 수출량이 이미 절반으로 감소했거나 구체적인 물량 제한이 시행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수입 제한만으로 유럽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산 차량의 유입이 줄면 유럽 제조업체들이 가격 경쟁 압력에서 일부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생산비용과 기술개발 속도, 전동화 전략, 소비자 수요에 대응하는 능력이 개선되지 않으면 시장 보호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특히 자동차 가격 상승은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산 저가 차량의 공급이 감소할 경우 유럽 제조업체의 판매 여건은 개선될 수 있지만, 소비자의 선택 폭과 가격 경쟁은 줄어들 수 있다. 산업 보호의 혜택과 비용이 제조업체와 소비자에게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구조다.

희토류 공급망, 중국이 가진 또 다른 협상력

유럽이 자동차 수입 제한을 추진하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희토류와 영구자석 공급망에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구동모터와 풍력발전 설비, 산업용 로봇, 방위산업 등 다양한 첨단 제조업에 사용된다. 특히 일부 고성능 영구자석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구동계 효율을 높이는 핵심 부품이다.

중국은 희토류의 채굴뿐 아니라 정제와 분리, 영구자석 제조 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유럽이 자동차 완성품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하더라도 관련 부품과 원자재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단기간에 줄이기는 어렵다. 자동차 생산과 핵심 소재 조달이 서로 다른 산업정책 목표를 요구하는 이유다.

이번 협상에서 중국은 희토류와 영구자석 수출 허가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한 이른바 '그린 채널' 운영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유럽 기업들이 필요한 원자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행정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출 허가 절차의 개선이 중국의 수출 통제 권한 자체를 없애거나 공급망 의존을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왕원타오(Wang Wentao) 상무부장은 EU가 직면한 경제 문제의 근본 원인이 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며, 중국은 문제 해결의 협력 상대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는 유럽의 산업 경쟁력 약화를 중국산 수입 증가만으로 설명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보여준다.

실제로 유럽 자동차 산업의 어려움에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 외에도 높은 생산비용, 전동화 투자 부담, 소비자 수요 변화와 미국의 통상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산 수입 제한이 일부 압력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중국 역시 유럽 시장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경제적 이유가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무역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유럽은 중국 제조업체에 중요한 수출시장이다. 따라서 중국이 자동차 수출 문제에서 일정한 조정을 수용하는 대신 다른 산업 분야의 시장 접근과 무역 관계 안정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동차와 희토류를 묶은 협상

이번 협상은 자동차 수출과 핵심 광물 공급이 별개의 통상 문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협상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U는 중국산 자동차 수입을 줄이는 동시에 중국산 희토류의 안정적인 공급을 원한다. 중국은 유럽 시장에서 자동차 수출에 대한 제약을 논의하면서도 핵심 원자재 공급망에서 확보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EU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지난해 하루 평균 10억 유로를 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양측은 자동차 수출 조정 외에도 약 40억 유로 규모의 유럽산 제품에 대한 중국 시장 접근성을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자동차 부품과 올리브유, 신발 등이 대상에 포함됐으며, 일부 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도 협의됐다.

이는 이번 협상이 자동차 산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유럽은 제조업 보호와 수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은 자동차 시장과 핵심 광물 공급망, 유럽산 소비재 수입을 하나의 통상협상에서 다루고 있다. 산업별 이해관계가 다른 EU 회원국들이 이러한 협상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중요한 변수다.

한국산업에 미칠 영향

한국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에도 이번 합의는 새로운 경쟁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유럽 유입이 실제로 줄어든다면 한국 자동차 업체에는 일부 시장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EU가 유럽 내 생산과 부품 조달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업정책을 확대한다면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차량과 부품에도 새로운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배터리 산업 역시 자동차 판매량의 변화만으로 영향을 판단하기 어렵다. 유럽의 전동화 정책과 현지 생산 요건, 중국산 배터리 소재의 공급 여건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희토류와 영구자석은 배터리 원료와 구분되는 공급망이지만, 자동차 전동화에 필요한 핵심 부품이라는 점에서 관련 산업의 조달 전략과 연결된다.

한국 기업은 중국산 자동차의 유럽 수출 감소 가능성뿐 아니라 유럽의 현지 생산 확대, 중국의 핵심 소재 수출 허가, 유럽 소비자의 차량 구매 수요를 함께 살펴야 한다. 중국산 차량에 대한 제한이 곧바로 한국산 차량의 판매 증가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협상의 실질적인 성과는 향후 이행 과정에서 확인될 것이다.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수출 물량을 어떤 방식으로 조정할 것인지, 희토류 수출 허가가 실제로 얼마나 신속해질 것인지, 유럽산 제품의 중국 시장 접근성이 개선될 것인지가 주요 판단 기준이다.

유럽이 중국산 자동차의 유입을 제한하는 동안에도 중국의 희토류 공급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산업 보호정책의 한계를 드러낸다. 수입 장벽을 높이는 조치는 특정 시장의 경쟁 압력을 줄일 수 있지만, 원자재와 부품 공급망에서 확보하지 못한 자율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유럽 자동차 산업의 장기 경쟁력은 중국산 차량을 얼마나 줄이는가와 함께 핵심 소재의 조달원을 다변화하고 생산성과 기술 경쟁력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도 같은 기준이다. 보호무역으로 생기는 단기적인 시장 기회를 활용하되 특정 국가의 원자재와 부품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유럽 현지 생산과 공급망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이번 EU·중국 협상은 자동차 시장의 경쟁과 핵심 광물의 공급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시대에 산업 경쟁력이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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