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순서
① AI가 사고의 한계를 넓힐 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② AI를 도입하는 기업과 AI로 창조하는 기업은 다르다
③ AI 시대, 기업 경쟁력은 조직을 바꾸는 속도에 달려 있다
글 | 임병민(IBM) 칼럼니스트
대부분의 기업은 AI를 도입하고 있다. 회의실에서는 생성형 AI가 화두가 되고, 임직원에게는 AI 교육이 제공되며, 고객센터에는 AI 챗봇이 들어가고 개발 조직에는 코딩 AI가 배치된다. 제조 현장에서는 비전 AI가 품질을 검사하고, 마케팅 부서에서는 AI가 광고 문구를 만들며, 경영진은 AI 관련 전략과 로드맵을 요구한다. 겉으로 보면 기업의 AI 전환은 이미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냉정하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AI를 도입한 것인가, 아니면 AI를 통해 기업 자체가 바뀌고 있는가? 이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AI 도입은 기술의 문제이며, AI 전환은 경영의 문제다.
기업이 AI 솔루션 하나를 구매하고 시스템 하나를 구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컨설팅 업체를 선정하고 플랫폼을 도입하며 몇 개의 파일럿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AI가 실제 업무 방식과 의사결정 속도, 조직의 역할과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와 기업의 경쟁 방식까지 바꾸고 있는가?
여기서 AI 도입과 AI 전환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긴다. AI 도입은 기존 업무에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얹는 것이다. 반면 AI 전환은 AI를 전제로 기존 업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기업의 인공지능(AI)과 전사적 자원관리(ERP)를 결합해 경영 활동을 자동화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더 정확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AI ERP 경영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영업사원에게 생성형 AI를 제공했다고 하자. AI가 고객 미팅 내용을 정리하고 제안서 초안을 작성하며 시장 정보를 검색해 준다면 분명 AI 도입이다. 그러나 영업사원의 업무 프로세스와 평가체계, 고객관리 방식과 영업정보 축적 방식까지 AI를 중심으로 재설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AI 전환이다.
마찬가지로 제조기업이 AI 비전검사 시스템을 설치했다고 해서 곧바로 AI 전환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AI가 불량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산조건과 품질 데이터를 연결하며, 공정 자체를 자동으로 조정하고 품질관리 조직의 역할까지 바꿀 때 비로소 전환이 시작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기업의 운영체계 안에 AI가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 있느냐는 것이다.
AI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AI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빠르게 AI를 조직 전체에 확산시키고 있는가’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어떤 기업은 수십 개의 AI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수많은 보고서가 나오고 개념검증(PoC)이 진행되며 세미나와 교육이 열린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현업의 일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어떤 기업은 소수의 AI 프로젝트로 시작하더라도 빠르게 검증하고, 실패한 것은 과감하게 중단하며, 성공한 것은 즉시 다른 조직으로 확산한다. AI를 잘 쓰는 개인이 생기면 그 사람의 노하우를 조직의 업무 프로세스로 전환한다. 한 부서에서 만들어진 AI 활용법을 다른 부서가 곧바로 가져간다. 업무 프로세스와 시스템, 데이터와 평가체계까지 연쇄적으로 바뀐다. 두 기업의 차이는 AI 기술 수준이 아니라 전환 속도의 차이다.
AI 시대에는 이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AI 전환은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AI를 활용하고, 그다음에는 한 팀이 활용하다가 어느 순간 팀의 업무 방식이 바뀌고 이것이 조직 전체의 표준이 된다. 표준이 바뀌면 시스템이 바뀌고 데이터가 축적되며, 다시 AI 활용 수준이 높아진다. 그 결과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빠르게 전환하는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구조를 갖게 된다. 반대로 느린 기업은 AI를 도입할수록 오히려 복잡성이 커질 수 있다. 부서마다 다른 AI를 사용하고 데이터는 연결되지 않으며, 기존 프로세스와 새로운 AI 프로세스가 충돌한다. AI를 도입했지만 직원의 업무는 오히려 늘어나고, 결국 “AI를 도입했는데 왜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이것은 AI의 문제가 아니라 전환 방식의 문제다.
많은 기업이 AI 전략을 세우면서 “무엇을 도입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그러나 이제 질문의 순서를 바꿔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 업무를 AI가 어떻게 다시 설계할 수 있는가? 그 변화를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전사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먼저 나와야 한다. AI 시대의 리더는 AI 기술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보다 변화의 속도를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디에 AI를 적용할 것인지뿐 아니라 어떤 업무를 버릴 것인지, 어떤 의사결정 구조를 바꿀 것인지, 어떤 조직의 역할을 재정의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완벽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기존 기업의 의사결정은 대체로 신중하게 검토하고 승인한 뒤 예산을 확보하고, 시스템을 구축해 충분히 테스트한 후 실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기업이 경계해야 할 가장 위험한 상태는 AI를 도입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업의 본질은 그대로인 상태다. 회의실에는 AI 전략이 있고, 보고서에는 AI 로드맵이 있으며, 곳곳에서 AI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직원들은 여전히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의사결정은 과거와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며, 조직의 핵심 성과 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도 그대로라면 그것을 AI 전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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